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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4.0] ① 의대만 찾는 학생들, 과학기술 인재는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초등·중등 학생 중 의대 지망자 21% 넘어 자연과학, 공학은 각각 18.7%, 15.5%에 불과 인재 길러야 한다지만 대학 교육 부실화로 학생들 불만은 커지는 상태

[인재4.0]은 정부가 주도하는 ‘신성장4.0’의 핵심이 선도 산업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는 벤처경제 시리즈입니다. 즉석에서 바로 활용하는 단순한 기능 인력뿐만 아니라, 고급 과학 기술을 도전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비롯한 주요 자연과학 도구 훈련이 탄탄하게 갖춰진 인재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일 메가스터디교육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종 목표로 하는 대학 전공을 묻는 질문에 초등학생의 23.9%가 ‘의학계열’로 답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같은 설문조사에서도 20.2%가 의학계열을 지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설문은 메가스터디교육의 초등부 서비스인 엘리하이 수강생 502명과 중등부 서비스인 엠베스트 수강생 84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초등·중등 전체 합계 21.6%의 학생들이 의학계열 진학하기를 희망하겠다고 응답한 반면, 국가의 미래 산업 인재로 자라나는 데 필수 전공인 자연과학계열 및 공학계열은 각각 18.7%, 15.5%에 불과했다.

갈수록 심화하는 의대 쏠림 현상

교육계 전문가들은 의대 쏠림 현상이 최근 들어 나타난 현상이 아닌 데다, 의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 전공들이 ‘가성비’를 못 맞춰주고 있기 때문에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정부 지원 아래 대학가에서 빠르게 확산된 AI 및 코딩 교육의 경우에도 돈과 인력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망하는 기초 교육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업계 관계자들에게 공통된 지식이다. 학원 등을 통해 대학 교수진들의 교육 부족을 해결해 보려는 노력도 잇따르고 있으나, 챗GPT가 등장하면서 IT 개발자 채용에서도 최상위권 위주로 채용이 변경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교육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한층 증폭되고 있다.

국내 최고 명문대 중 한 곳인 K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A학생은 이미 대학 들어갈 때부터 로스쿨 입시를 생각하고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전공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같은 대학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B학생은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통계학과, 경제학과 등을 선택한 문과 학생들은 대부분 일찌감치 로스쿨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도 내놨다. 이어 B씨는 “문과는 로스쿨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의전원이라도 있었으니 도전을 했겠지만, 요즘은 의대 가겠다며 반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관 자료사진=TheSavvyPre-Med

의대가 ‘가성비’ 전공이 된 이유

의학계열이 문과 대부분의 전공에 비해 학비가 2배 이상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가성비’로 인정받는 이유를 같은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C씨는 ‘졸업 후 확실한 직장 및 라이선스’라고 답했다. 로스쿨과 더불어 의학계열은 졸업과 동시에 국가 자격 시험을 치르면서 전문성을 국가로부터 인증받는 ‘타이틀’을 바로 확보할 수 있고, 자격증이 금전적인 이득으로도 바로 돌아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타 전공의 경우 정부가 제시하는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없는 데다, 받기 위해서는 회계사, 노무사, 변리사 등과 같이 개인적으로 추가적인 공부를 이어가야만 한다. 회계사 시험 합격자 숫자를 2000년대 초반부터 크게 늘리면서 합격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그만큼 업계 내에서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B씨에 따르면 이로 인해 상경계열 학생들 중 최상위권 대학으로 알려진 속칭 SKY에서는 회계사 시험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자격증 정도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의대가 ‘가성비’ 전공이 된 또 다른 이유로 대학 교육 붕괴를 꼽는다. 학생 숫자에 따라 교육부의 지원금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고착화되면서 교수들이 고급 교육을 포기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따라갈 수 있는 쉬운 교육 위주로 접근하는 데다, 교수진 급여도 민간 기업으로 간 학창 시절 동료들보다 크게 부족하다 보니 정부, 기업들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모든 역량을 쏟는 교수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 연구에 시간을 쓰는 비중이 줄어드는 만큼 자연스럽게 대학 교육의 질적 저하가 일어났고, 시대가 바뀌면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같은 노트를 계속 쓰고 있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의대를 ‘非가성비’로 바꿔야한다? 미래 기술을 ‘가성비’로 바꿔야한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건강보험 등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덕분에 의학계열 졸업생들이 지나치게 안정적인 보수를 보장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는 것이 일반적인 시장 경쟁의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열은 지나치게 높은 ‘하방 안정성’을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교수진들은 교육부가 미래 기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한국의 대학 교육이 글로벌 주요 명문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것이 경쟁력 저하의 주원인인 만큼, 교육을 통한 연구역량 강화와 사업화 지원은 물론,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학생 숫자대로 지원을 주는 시스템이 아닌, 교육 역량 및 우수 인재 배출 여부를 기준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국내에 AI 전문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2020년부터 노력하다 교육부와의 마찰 끝에 2021년 가을학기부터 스위스AI대학을 통해 한국 학생들을 교육해 온 이경환 교수에 따르면 국내 명문대 석사 교육 과정에는 3년제 유럽 학부제 기준으로 2학년 수준의 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명문대 박사 교육에 유럽 학부 3학년에 해당하는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마저도 수준 차이가 나는 탓에 한국인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주요 명문대학으로 알려진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등의 주요 대학 출신 학생이 지난 2년간 약 20명, 그 외 대학에서도 석사 이상의 대학원 학위자를 포함해 약 30명의 국내 최상위권 인재를 받았으나, 졸업이 가능한 학생은 전체 50명 중 10명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육 수준이 영미권 및 서유럽의 주요 대학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와중에 의대, 로스쿨은 정부가 지원해 주는 ‘라이선스’가 있는 반면, 타 전공은 학생들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원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인 만큼 학생들의 의대, 로스쿨 쏠림 현상이 더 가속화되지 않겠느냐는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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