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비대면 진료 제도화’ 논의, 현실적 한계 인정하고 ‘해결 방안’ 논의할 때

‘유니콘팜’ 비대면 의료 제도화 관련 토론회 개최, ‘재진’ 중심 제도화 방안 비판 이어져 몇 개월째 제자리 맴도는 논의, 비대면 의료의 현실적인 부작용과 한계 명확히 인지할 때 제도화 반대하던 의료계의 협조적 태도 확인, 시범사업 진행하며 관련 업계 합의 도출해야

유니콘팜이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비대면진료 입법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길은진 굿닥 대외협력실장, 이호익 솔닥 공동대표, 임현정 헥토클리닉 공동대표/사진=유니콘팜

비대면 진료 제도화와 관련한 논의가 정체되어 있는 가운데,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과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국회 스타트업연구모임 ‘유니콘팜’이 지난 1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제4회 스타트업 토크 ‘비대면 진료 입법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에 따르면, 국내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재진 환자와 도서·벽지 등 의료취약지 환자들을 중심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진 환자 중심 비대면 진료는 실효성이 떨어지며, 기계적 구분하에 비대면 진료 대상을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중단 목전에 앞둔 비대면 진료, 제도화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된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오는 5월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조정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비대면 진료는 5월부터 다시 ‘불법 행위’가 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한 방안을 다수 내놓았으나, 플랫폼 업계와 의료업계 등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며 좀처럼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에 유니콘팜은 현장 의견을 청취해 비대면 진료 상시화를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이번 토론회를 개최했다. 유니콘팜은 국민의 의료 권익 신장을 위해 비대면 진료 상시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환자 범위를 ‘네거티브 규제’로 규정해 비대면 진료를 현행과 동일하게 유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여야 공동 발의한 바 있다.

유니콘팜 공동대표이자 초진 환자를 포함하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법을 대표 발의한 김성원 의원은 개회사에서 “비대면 진료는 한시 허용됐지만 장애인, 노인 등 의료 약자부터 직장인, 소상공인, 육아맘 등 평소 병원 방문이 어려웠던 국민들의 의료접근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긍정적인 평을 내놨다.

유니콘팜 공동 연구책임의원을 맡고 있는 국민의힘 이용 의원은 축사에서 “비대면 진료는 평소 병원에 가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등 국민 의료 편익을 증대시켰다”며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해지면 많은 국민께서 불편을 느낄 것이기에 합리적 제도화를 위해 초당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도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로 하루 확진자가 62만 명에 육박했을 때 비대면 진료가 위기 극복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재진 한정’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대한 비판이 다수 제기됐다. 비대면 진료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임지연 원장은 “초진·재진 등 기계적 구분에 따른 비대면 진료는 많은 모순과 한계를 갖고 있다”며 “환자의 질환이나 상태, 경중에 따라 비대면 진료 여부가 판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면 단순히 초진과 재진으로 진료 대상을 구분하는 것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비판이다.

비대면 의료 중개 플랫폼 솔닥의 이호익 공동대표는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허용돼야 환자 고립을 해소하고 치료의 효용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사 출신인 헥토클리닉 임현정 공동대표 역시 “공장형 약국, 환자 쏠림 현상, 오투약 등 약사들의 우려가 있었으나 이는 모두 기우였다”며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된다면 진료 범위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현행대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비대면 진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건의료계는 비대면 진료 입법과 관련해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 입법 이후 이뤄질 보건의료 패러다임 전환에 주목하고 있다”며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데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사회 관계자는 “처방약 오배달 등 다양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초·재진 논의보다) 제도적 보완책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대한약사회는 조제약 공장형 약국 개설 및 환자 쏠림 현상, 오투약 등을 이유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반대해 온 바 있다.

비대면 진료의 현실적 한계

유니콘팜 측에서는 비대면 진료의 긍정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지만, 안전 및 의료 서비스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의료계에서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며 처방전 위조 또는 중복 사용, 전문의약품 환자 선택으로 인한 의약품 오남용, 의약품 오배송 등 의료 안전 문제가 부각된 것이다. 플랫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24시간 진료, 휴일 진료 등 ‘출혈 경쟁’ 서비스가 등장, 의료 시장 전반의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의료계는 환자에 대한 보건의료 정책은 편리함보다 안전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지난해 7월 대한내과의사회·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등 4개과 의사회가 각 의사회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대면 진료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 전화 상담이나 처방에 참여했던 의사들의 72%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당시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의 제한적인 진단 방법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대면 진료 시 의사는 기본적으로 문진·시진·청진·타진·촉진을 실시하며, 경우에 따라 피검사·조직검사, CT·MRI 등을 활용해 병명을 진단하게 된다. 그러나 비대면 진료는 문진 후 불안정한 수준의 사진만으로 환자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 만큼 제한된 정보로 인한 오진은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상업성’ 역시 문제로 지목됐다. 플랫폼 업체들이 특정 병원 및 약국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경우 비대면 진료 자체가 의료 영리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2년간 확인된 비대면 진료 관련 부작용 사례는 368만 건에 달하며, 비대면 진료 과정에서 9건의 약사법 위반 사례들이 행정 고발됐다. 대표적 부작용으로는 약사법상 광고가 금지된 전문의약품 광고, 전문의약품 선택 유도, 불법 의료 광고 및 환자 유인 행위, 의료 서비스 및 의약품 오남용 등이 있다.

소비자 수요와 의료계 입장 변화 확인, 논의 진전될 때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여론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바쁜 일상생활로 병원에 직접 방문할 시간이 부족한 소비자가 많고, 간단한 약물 복용으로 회복되는 경증 질환의 경우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의 입장을 대변하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이하 원산협)는 지속적으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의 이용자 수를 언급하며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비대면 진료가 2020년 2월 한시 허용된 이후 3년간 이용자 수는 1,379만 명, 이용 건수는 3,661만 건에 달한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논의의 핵심 당사자인 의료계의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의료계는 지난해까지는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최근에는 국내 의료 환경에 맞는 충분한 규제하에 제도화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확인된 만큼, 미래 의료 환경 변화를 고려했을 때 제도화를 무작정 반대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실정에 맞는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고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경우 관련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소비자 수요와 의료계의 논의 참여 의지가 확인된 이상, 이제는 지지부진한 논의가 아닌 실질적인 논의 진척이 필요한 시기다. 현재 관련 업계는 ‘초진·재진’ 등 세부적인 사항에 초점을 맞추고, 각자의 이해관계 위주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의료계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 시 발생하는 부작용 및 우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플랫폼 업계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해결 방안을 내놓으며 관련 논의를 발전시켜야 할 때다.

정부는 현재 비대면 진료 중단에 따른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시범사업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진행될 비대면 진료 관련 법안들의 공통적 부분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차후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관련 업계의 우려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빠른 시일 내로 우리나라 의료 상황에 적합한 비대면 의료 규제가 정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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