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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임금低고용] ④ 취업난 vs 구직난, 20:80 사회의 한 단면

기업들 구직난에 급여 인상 통한 ‘알짜 인재’ 채용에 나서 구직자들 여전히 ‘대기업’, ‘공기업’만 목매, 역량 쌓기는 뒷전 시간 지날수록 역량 탄탄한 인재만 시장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란 전망도

연세대 경제학과의 김정식 교수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 기준 한국의 대졸 초임은 경쟁국인 홍콩, 대만의 2배에 이른다. 대졸 취직자들의 생산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가정하면 한국이 훨씬 더 많은 급여를 주는 셈이다.

특히 홍콩이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배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급여를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특히 취업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심각한 상태로 발생하는 주원인 중 하나로 주변국 대비 생산성과 연봉 간의 격차가 큰 부분을 지적한다.

취업난 vs 구직난

많은 구직자들이 ‘거기는 안 간다’며 주요 대기업 및 공기업을 제외한 다른 직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 기업 인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인사 관계자는 “부끄러워서 중소기업 다닌다고 말을 못 하고, 반대로 대기업에서 비정규직 청소부여도 대기업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한국 구직자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업무 내용의 적합성에 따른 커리어 개발이 아니라 ‘얼마나 부끄럽지 않은 회사에 다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일부 알려진 기업들의 채용 자리가 아니면 대부분의 구직자들이 ‘취업난’을 겪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채용을 담당하는 기업 인사 관계자들도 ‘직원 뽑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최근 비즈니스 명함 공유 서비스에서 직장인 커뮤니티로 서비스를 확대 중인 리멤버에는 법인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용자가 ‘주변에서도 사람 뽑기 어렵다고 하고, 뉴스에서는 취업난이라고 하고, 태어난 인원 숫자가 적어서 그런 건가’라는 질문과 함께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출생아 숫자를 담은 데이터 파일을 올리기도 했다.

이어진 댓글에는 ‘일하지 않아도 각종 지원금을 주는데 누가 열심히 일 하겠는가’라는 반문과 함께 ‘너도나도 대기업 찾고, 편한 일자리 찾고, 놀면서 부모형제…’ 라는 글들이 달리면서 커뮤니티 이용자들 사이에 한 차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인 대표가 아닌 대부분의 취직자들은 ‘부끄러워서’ 다니고 싶지 않은 회사이기 때문에 더더욱 인재가 모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대기업도 구직난은 마찬가지

중견대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을 맡고 있는 김 모씨는 “30년을 다녔지만 회사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해서 제대로 되는 걸 본 적이 없다”며 “대기업이라고 해서 마음에 드는 인력을 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대기업 인사팀 출신으로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팀장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 모씨도 “어차피 일부 슈퍼 인재들이 아니면 학벌, 시험 점수 같은 값들에 관계없이 고만고만한 인력이 대부분”이라며 “신산업을 도전하려면 슈퍼 인재가 여럿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통설”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반 인재들 사이에서도 결격 사유들이 있는 경우에는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합격자라는 이유로 업무 역량이 눈에 띄게 더 뛰어난 경우는 흔치 않다”며 “그래서 슈퍼 인재는 어느 조직을 가나 특별 대우 리스트에 올려놓는다”고 답변했다.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에 다니는 것과 중소기업에 다니는 것 사이에 큰 격차가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인사담당자의 기준에는 슈퍼 인재가 아닌 경우에야 대동소이한 업무 역량 사이에서 결격 사유가 좀 더 적은 구직자가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출처=Ashraf et al., 2020

20:80의 사회, 결국 임금 높여서 알짜 인재 채용에 나선다

인사 담당자 최씨는 기업들이 20%의 업무 잘하는 인력이 80%의 업무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최근 들어 80%의 비효율적인 인력을 걸러내는 데에 급격히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2019년부터 투자금을 고급 인재 채용에 적극적으로 쏟아부으면서 인력 시장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며 “그러다 최근 들어서는 고액 연봉을 제시해 엄격한 검증을 거치게 한 다음, 급여도 기본급에 높은 상여금까지 추가로 제공하면서 업무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전했다.

노동경제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잠비아 정부가 국가 보건 요원을 선발하면서 사회봉사 정신이 투철한 사람(패널A)과 인생의 성취를 중요시하는 사람(패널B)을 대상으로 한 공고를 내고, 각각 다른 성향의 인력들을 채용하는 사회 실험을 한 사례가 있다. 실제로 업무 성과를 측정한 결과 봉사 정신이 투철한 패널A에 비해 성취를 중요시하는 패널B가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오지에서의 근무였기 때문에 봉사 정신이 투철한 인력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성취를 중시하고 금전적 인센티브를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에 역량이 더 발전했던 것이다.

인사 담당자 최씨는 위의 사례에 대해 “논문까지 기초로 해서 인사팀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력을 채용해 상여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사 채용 방식을 바꾼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고 답변했다. 이어 “국내 대기업, 투자금을 넉넉하게 받은 스타트업들이 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들어서는 20%의 인력에서 80%의 업무를 맡기기 위해 급여가 높더라도 검증된 고급 인력들만 채용하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견 대기업의 재무 임원 김씨도 “최근 들어 채용 숫자는 줄이고 급여는 높이면서 더 ‘스펙이 좋은 인재’를 뽑는 방식으로 인사 정책이 바뀌었다”며 “면접 중에 오래 가르쳐야 될 것 같으면 배정된 예산을 아끼자는 생각에, 인사팀에 굳이 뽑자는 부탁을 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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