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치까지 치솟은 사교육비 부담, 병드는 한국 교육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 27조1,000억원, 3년 연속 최대치 경신
사교육 의존도 낮추려면 공교육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교육계 "고질적인 '입시 경쟁' 문제 해결이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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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정의 사교육비 지출액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14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전국 초·중·고 3,000곳 학교 학생 7만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000억원으로 1년 새 4.5% 뛰었다. 이는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3.6%)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학생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 사교육 시장 과잉 경쟁을 딛고 3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에 ‘출산 기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도 미혼 자녀가 있는 부부 가구의 학원 교육비 지출은 월평균 39만9,375원으로 2022년(36만3,641원) 대비 9.8% 증가했다. 특히 여타 지역 대비 교육열이 높은 서울의 경우, 1인당 사교육비가 74만1,000원(사교육 참여 학생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서울 고등학생들의 1인당 사교육비는 98만8,000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들어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영유아마저 사교육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6월 육아정책연구소(KICCE)가 발표한 5차년도 ‘KICCE 소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만 0~6세 영유아 2,393명 중 21.9%가 최근 석 달 이내 학원을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학교 입시를 중심으로 심화하던 사교육 의존 기조가 점차 덩치를 불려 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이 저출산 기조 심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자녀에게 충분한 사교육 지원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부부들이 줄줄이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19~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출산을 꼭 하겠다’고 답한 청년은 전체 중 17.1%에 불과했다. 이들은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로 양육비, 교육비 등 경제적 이유(57%)를 지목했다.

사교육 줄이려면 공교육의 ‘공백’ 메워라

전문가들은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위해 공교육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 차원의 교육이 학생들의 연령대별 ‘공백’을 적극적으로 해소, 사교육 의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초등학교의 경우, 늘봄학교 운영 강화를 통해 양육 공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직 어린아이를 홀로 둘 수 없어 사교육을 택하는 학부모들이 정부 차원의 ‘돌봄 서비스’에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중·고등학교의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입시’에 실질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학습 노력은 오롯이 대학 입시로 귀결된다. 청소년 대상 교육이 명문 대학에 입학하고, 고수익 직장에 취직하는 ‘엘리트 루트’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보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매달 수십만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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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당장 고질적인 입시 경쟁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선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동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 교육부 역시 중·고등학교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서는 △EBS(교육방송) 무료 콘텐츠 강화 △수능 공정성 제고 등 입시 중심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 보다 근본적 문제에 집중해야”

한편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정책 실패가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했다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정부가 근본적 문제인 ‘입시 제도’에 대한 개편 노력 없이 교육계의 혼란만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14일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사교육비가 치솟는 여러 요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대입 환경 급변 등”이라며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입시 정책을 비판했다. 무리한 의대 증원 추진 등으로 입시 상황이 급변하며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증대됐고, 이에 따라 사교육 수요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때려잡는다며 헛발질한 결과 또다시 사교육비가 최대치를 경신했다”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입시 경쟁과 대학 서열화”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사교육 의존을 초래하는 대한민국 교육계의 구조적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초점을 맞춰 교육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역시 현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과열된 경쟁과 사교육비 증가를 유발하는 대입제도·평가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 △2029학년도 이후 단계적 절대평가 도입 추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등의 재지정 평가 내실 운영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설립 취지 위반 감독 강화 △자기주도학습전형 보완·확대 등을 통해 사교육 유발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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