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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리걸테크 날개 꺾인 사이 ‘무혈입성’하는 美 렉시스넥시스, 반격무기 없는데 어쩌나

렉시스넥시스, 법률 AI 솔루션‘렉시스플러스(Lexis+) AI’ 런칭 행사 개최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 연평균 9% 성장, 2032년 700억 달러 규모 전망
한국 리걸테크 산업 기술 성적은 '처참', 정부 규제 및 변협과의 갈등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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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걸테크 공룡 기업 렉시스넥시스(LexisNexis)의 국내 상륙 초읽기가 시작된 가운데, 혁신의 날개가 꺾여 버린 국내 리걸테크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 법률 시장에서 앞다퉈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하고 있으나 국내 업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거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해외기업이 무주공산을 차지하는 꼴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 확보에 실패할 경우 해외 서비스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렉시스넥시스, AI 솔루션 ‘렉시스플러스’ 국내 런칭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에 본사를 둔 리걸테크 기업 렉시스넥시스는 8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에서 법률 특화 AI 솔루션인 ‘렉시스플러스(Lexis+) AI’ 사전 런칭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런칭 행사는 이달 19일 한국 출시를 앞두고 마련됐다.

렉시스넥시스는 상업용 데이터베이스 기업으로 판결문, 법령, 주석서, 실무지침서, 공공데이터 등 2.5 PB(페타바이트) 규모의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렉시스넥시스가 진출한 국가는 150개국에 이른다. 이번에 국내에 런칭하는 렉시스+AI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출시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생성형 법률 AI 서비스로, 채팅을 통해 묻고 답하는 대화형 검색 기능을 갖췄다. 일상적인 언어로 법률 지식을 물어도 답변받을 수 있으며,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경우 처음부터 다시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 검색 재시도 시 렉시스+AI가 기존 대화까지 취합해 답변해 준다.

법률 문서에 대한 요점 요약 서비스도 제공한다. 렉시스+AI는 법률 자료 내 핵심 주제, 주요 개념을 식별해 압축 형태로 제시한다. 렉시스넥시스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솔루션은 수천수만 건에 달하는 문서를 한 페이지로 요약해 검토에 필요한 핵심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으며, 검색 결과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렉시스+AI를 활용해 법률 문서 초안 작성도 가능하다. AI가 스스로 법률 문서를 검색, 분석해 10초 안에 결과물을 제공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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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걸테크 산업의 비약적 성장

글로벌 미래 먹거리로 평가되고 있는 리걸테크는 최근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랙슨(Tracxn)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리걸테크 기업은 7,000여 개, 투자 규모는 113억 달러(약 15조원)에 달한다. 또한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 8.9%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오는 2032년까지 697억 달러(약 92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생성형 AI 기술에 대한 투자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AI를 가장 빠르게 흡수한 분야가 바로 리걸테크다. 지난해 6월 글로벌 미디어 그룹 톰슨로이터가 법무 AI 스타트업 케이스텍스트(Casetext)를 인수한 사실이 이같은 트렌드의 일단을 보여준다. 법률 시장에서의 AI 기술 도입 흐름은 지난달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ABA 테크쇼 2024’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테크쇼 현장에서는 혁신 리걸테크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15개 기업 가운데 50% 이상이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재 AI를 기반으로 한 리걸테크 시장을 이끄는 국가는 미국이다. 렉시스넥시스 외에도 하비, 디스코, 아이매니지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비는 메타와 구글 딥마인드에서 AI를 연구를 이끌었던 가브리엘 페레이라 대표와 변호사 출신 윈스턴 와인버그 대표가 2022년 공동 설립한 기업이다. 현재 기업가치는 7억2,000만 달러(액 9,500억원)으로 유니콘 등극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일본에서도 AI를 기반으로 한 리걸테크 기업의 성장세가 매섭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일본의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인 쓰노다 노조무 대표가 설립한 리걸온테크놀로지가 꼽힌다. 리걸온테크놀로지는 AI 기반의 계약 리뷰 서비스인 ‘리걸포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가격을 낮춘 AI 계약서 심사 서비스도 내놨다. 일본 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 벤고시닷컴도 기존 전자계약 서비스 ‘클라우드사인’에 AI 계약서 심사 기능을 추가하는 등 경쟁력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밖에도 지바테크, 산산 같은 리걸테크 기업이 AI 기반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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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앤컴퍼니

기득권에 발목 잡힌 사이 뒤처진 국내 리걸테크 생태계

반면 국내 리걸테크 산업 발전은 상당히 더딘 편이다. 글로벌 리걸테크 분야에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7개, 예비유니콘(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이 27개인 데 반해 국내에는 예비유니콘으로 선정된 기업 1곳(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뿐이다. 더욱이 국내 리걸테크 기업은 대부분 △변호사 검색이 △판결 분석 △전자 계약 등 단순 서비스 제공에 그치는 등 최신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해외에 비해 기술 경쟁력 면에서도 뒤처져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AI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리걸테크를 고도화하는 시도가 포착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1위 법률 플랫폼인 로앤컴퍼니과 대한변호사협회와의 갈등 여파로 인해 산업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고 보고 있다. 8년 넘게 이어져 온 변협과의 지난한 갈등 끝에 로앤컴퍼니가 승기를 잡긴 했지만, 사실상 상처만 남은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 개척에 있어 시기와 속도가 가장 중요한 스타트업이 사업 초기부터 기득권과의 갈등으로 인해 법률 시장 혁신의 날개가 꺾여버렸기 때문이다.

AI 기술을 앞세워 한국 법률시장 공략을 예고한 렉시스넥시스의 상륙에 국내 업계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국내 리걸테크 기업은 물론 로펌과 법원까지 AI 활용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공룡 기업이 한발 앞서 법률 AI 솔루션을 내놨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 공략을 앞두고 우리 기업과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지난 1월 렉시스넥시스는 국내 법률 정보 서비스 중 가장 많은 이용자수를 보유한 케이스노트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렉시스넥시스가 한국 법률에 특화된 AI 서비스를 출시할 경우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사실상 속수무책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렉시스넥시스 직원 수는 무려 1만500명으로, 로앤컴퍼니(51명) 엘박스(49명) 로앤굿(15명) 등에 비해 규모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이와 관련해 리걸테크 업체인 로앤굿의 민명기 대표는 “한국 회사들은 변호사단체와의 갈등을 우려해 사소한 데이터 활용에도 소극적인데, 해외 기업들은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사업한다”며 “한국 법률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리컬테크 업계 관계자도 “토종 기업들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데 외국 기업이 무혈입성해서 무주공산을 차지하는 모양새”라며 “국내 기업에 지나치게 가혹한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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