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따라 신사업 한다던 기업들, 절반은 주가 부양 꼼수였다?

테마주, 실제 사업 없이 계획만 발표한 경우 절반 넘어, 매출액 내는 경우는 극소수
업계 관계자들 "테마주 사업 계획 발표 기업의 실제 인력 상황, 사업 계획 상세히 살펴야"
국내 기업들의 '선 보도 후 집행'이 업계 관행이란 지적도

상장사들이 ‘테마주’로 꼽히는 이차전지 등 신사업을 하겠다고 공시한 뒤 실제로는 추진한 실적이 없는 사례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금융감독원은 2021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정관에 사업목적을 추가·삭제·수정한 상장사 1,047곳에 대해 △사업목적 현황 △변경 내용 및 사유 △사업 추진현황 및 미추진한 사유 등에 대해 점검했다고 밝혔다. 점검 결과 메타버스·가상화폐·NFT·이차전지·인공지능·로봇·신재생에너지·코로나19 등 주요 7개 테마 업종을 추가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목적을 변경했던 상장사 233개사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9개사(55%)는 하겠다던 사업 관련 추진 내역이 전무했다.

CRS WISARD and key (computer; key - hardware)
IT 기업 하드웨어 장치/출처=Brunel University

테마주 사업체들 절반은 사업 실체 없는 주가 부양 목적?

이번 금감원의 조사에 따르면 관련주 급등 시기인 2021년 말에서 2022년 초 사이에 메타버스(59개사), 가상화폐 및 NFT(79개사) 등이 사업목적을 추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최근 들어서는 이차전지,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목적을 추가한 회사가 각각 125개사, 92개사로 파악됐다. 그러나 상장사 중 무려 55%가 당초 계획을 밝힌 사업을 추진한 내역이 전무했던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주가 부양 목적의 사업 계획 발표가 아니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추진 현황이 있는 104개 회사 중에서도 47개 회사만 해당 사업과 관련한 매출이 발생하고 있고, 이 중 타 사업부와 분리할 수 있을 만큼 유의미한 매출액을 만들어내는 상장사는 4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사업을 추진하지 않은 이유로는 기업의 재무 및 경영 안전성이 낮고, 내부 통제에 문제점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이번 금감원 조사의 발표다. 이 중 회사의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전후 과정에서 해당 사업목적을 추가한 경우도 빈번(36%)했고, 횡령·배임, 감사(검토)보고서 미제출,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관리종목 지정 및 상폐사유가 발생(22%)한 사례도 많았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신사업 발표 직후 주가가 급등하는 것을 노려 최대 주주 관련자가 CB(전환사채)를 전환한 후 주식을 매도하고, 사업 추진은 철회하는 등 부정 거래 혐의 기업도 일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허위 신사업 추진 관련 불공정거래 혐의가 포착된 종목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고 혐의 적발 시 엄중히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 널리 알려진 관행, 이번 조사는 사실 확인에 불과

보도를 접한 벤처업계의 한 경영진(C-level) A씨는 “다음 라운드 투자를 받기 위해서 일부러 테마주에 해당하는 단어를 끼워 넣는 경우도 흔한 만큼, 발언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회사들이 너도나도 테마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실제로 사업을 전혀 진행하지 않는 것은 흔히 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인사 영입을 핑계로 신규 사업 계획을 밝힌 다음, 영입 인사가 빠르게 퇴사하도록 유도하거나, 영입 인사에게 인적·물적 지원 없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라고 압박하는 등 사실상 사업 의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도 내놨다.

VC 업계 경력 5년차인 40대 초반의 VC 투자자 B씨는 신규 투자를 받기 위해 영입한 인력들이 회사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으면 사업 계획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어렵다면서 “회사의 신사업 의지, 기술적인 역량, 영입 인원과의 케미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B씨는 “대부분의 벤처기업, 코스닥 상장사들이 실질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아 계획했던 사업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적인 관점으로 기업 평가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A씨는 익명을 요구한 몇몇 기업들을 열거하며 대표 교체에 따른 기존 투자자 및 시장 설득을 위해 일부러 언론에 새로운 사업을 한다고 발표한 사례, 인수했던 스타트업의 주요 인재가 모두 탈출해 회사를 차리는 바람에 수백억의 손실을 본 모 대기업이 사업 계획 철회를 2년 후에나 발표했던 사례 등을 공유하기도 했다. 신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사업이 안정화된 상태에서 신사업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 일부가 짧게 논의한 계획만 있는 상태에서 발표가 이뤄지다 보니 장기 지속성에 의문이 드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업계 관행으로 인한 피해는 개미들에게 전가

결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확장 사업을 계획했던 모 중견 기업의 C씨는 기업주가 결제 데이터를 이용해 매출액을 내겠다는 언론 발표를 한 후에도 전혀 진행이 없던 와중에 데이터 전문 벤처기업 한 곳과 뒤늦게 사업계획이 진행됐던 사실을 제보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벤처기업과 계약이 진행되지 않아 결국 결제 데이터 활용 사업을 포기했으나 여전히 해당 기업의 사업목적 중에는 데이터 활용 사업이 기재된 상태다.

A씨는 “국내에 제대로 테마주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인재가 거의 없는 만큼, 실력파 인재가 회사, 학교 등을 뛰쳐나와 스타트업을 차리고 시도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기업들이 그런 인재를 확보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평가했다. 특히 L모 대기업의 경우, 미국 M모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인력을 2020년 하반기에 AI 부문 총괄 책임자로 영입했으나, 이후 3년간 총괄 책임자가 무려 10번이나 바뀌면서 사실상 AI팀이 개점휴업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AI팀으로 배정받은 한 인력에 따르면, 기존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학부 저학년 수준의 조잡한 프로젝트들로, 실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단번에 파악됨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기업 내 예산 낭비만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B씨는 기업이 신사업 계획을 발표했을 때는 벤처기업, 코스닥, 코스피 기업 등에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해당 사업을 위한 인력을 갖추고 있는지, 매출액이 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테마주’에 해당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인 투자자들이 항상 공시 자료 이상의 추가 정보를 찾아볼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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