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없는 기업의 가치가 10억 달러? AI 기업의 밸류에이션

테크크런치 컴퍼런스, AI 기업 벨류에이션 토론 진행 가시적인 매출 없는데도 과도한 밸류에이션 평가에 지적 고가의 컴퓨터와 높은 개발 비용 필요, 당연한 평가란 의견도

최근 생성형 AI 기업에 대한 투자 돌풍이 거센 가운데 AI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달 개최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컨퍼런스'(TechCrunch Disrupt conference)에 참여한 투자 패널들은 가시적인 매출을 내지 않은 AI 기업들이 높은 밸류에이션을 평가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AI 기술이 시장에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출 평가는 이르다는 의견도 나왔다.

TechCrunch Disrupt conference 2023/사진=TechCrunch

AI 기업 밸류에이션, 주요 의제로 대두

지난 9월 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스타트업 전문 컨퍼런스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컨퍼런스 2023에 참석한 투자 패널 중심으로 AI 기업에 대한 과도한 밸류에이션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테크크런치 측도 해당 논의에 관심을 가지고 ‘AI 기업이 10억 달러(약 1조3,410억원)의 기업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투자 패널들은 수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고 있는 AI 기업 대부분이 가시적인 수익 창출이 전무하다고 밝혔다. VC 투자 기업 티어리벤처스(Theory Ventures) 설립자 토마스 텅거즈(Tomasz Tunguz)는 1,000만 달러(약 135억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는 순수 AI 스타트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 25개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투자 시장에서 주목받는 AI 기업의 95%가 연간 매출액 500백만 달러(약 67억원)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AI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은 실제 매출보다 미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우선 됐다며, AI 기업의 가시적인 매출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실제로 AI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OpenAI가 ChatGPT를 공개한 이후다. 텅거즈도 “AI 기술이 공개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AI 제품을 상용 개발하고 판매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동의를 표했다.

2022년 이후 생성형 AI 기업 밸류에이션 자료(2023.9.27. 기준)/출처=Pitchbook

투자 전문 싱크탱크 피치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AI 기업은 저조한 매출 실적에도 불구하고 1억 달러(약 1,341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로 투자 라운드를 진행한 기업이 7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투자 전문가들은 AI 기업에 대한 높은 밸류에이션은 다른 산업군의 밸류에이션 하락에 따른 ‘시소 효과’란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AI 기술 고객의 대부분은 무료 고객이란 지적

AI 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탈(VC)은 AI 기술을 이용하는 방대한 고객 수를 AI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의 근거로 제시했다. 일부 투자 전문가들은 해당 고객의 대부분이 무료 고객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4월 프로그래머들에게 AI 기반 언어 기술 개발 관련 오픈소스 코드 정보를 제공하는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랭체인(LangChain)은 유료 고객이 한 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4,500만 달러(약 608억원)의 기업가치로 시드 투자 라운드를 마감했다. 뿐만 아니라 랭체인은 시드 투자 라운드가 종료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기업 세쿼이아(Sequoia)로부터 약 2억 달러(약 2,703억원)의 기업가치로 선제적인 시리즈 A 투자 제안을 받았다.

당시 랭체인의 시드 투자 라운드를 주도한 VC 벤치마크(Benchmark)의 제너럴 파트너 마일스 그림쇼(Miles Grimshaw)는 “랭체인에 유료 고객이 없다는 것은 투자 진행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무료 고객 확장도 잠재적인 고객 유치 영역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에 무료 고객 대상으로 유료 고객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투자적인 관점에서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VC 언유주얼벤처스(Unusual Ventures)의 투자 파트너 산디아 에그데(Sandhya Hegde)는 “그동안 수많은 고성장, 저수익 스타트업이 가입자 수를 기반으로 성장형 투자 라운드를 진행해 왔다”며 “해당 기업들의 유료 고객 전환율이 극히 낮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무료 고객 기반의 밸류에이션 평가에 우려를 표했다.

소요 비용 크기 때문에 높은 밸류에이션 당연하다는 의견도

AI 산업에 투자한 VC 관계자들은 AI 산업 특성상 딥러닝이나 고도의 연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고가의 컴퓨터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거액의 자금이 투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VC NEA 제너럴 파트너 바네사 라르코(Vanessa Larco)는 “아직 매출 활성화가 안 된 기업이 1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도 “투자자가 원하는 AI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선 엄청난 개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AI 기업이 요구하는 최소 투자 금액은 약 3,000만 달러(약 405억원)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I 기술과 같은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선 높은 밸류에이션이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만약 과도한 밸류에이션이 걱정된다면 투자 라운드에서 AI 기업 측이 다소 높은 지분 희석률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원활한 자금 조달이 가능할 것”이라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무 전략적 관점에서 생성형 AI 기업보다 AI 인프라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는 투자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생성형 AI 기업은 고가의 컴퓨터 시스템과 높은 개발 비용이 필요하지만 랭체인같은 AI 인프라 기업은 딥러닝과 같은 고도의 연산 작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적은 비용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테크크런치 컨퍼런스에 참석한 투자 패널들은 AI 산업이 높은 밸류에이션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며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VC 그레이록 파트너스(Greylock Partners)의 제너럴 파트너 샘 모타메디(Saam Motamedi)는 “현재 AI 산업은 가장 활발한 투자처이자 미래 사업이기 때문에 많은 투자 자금이 개발 비용으로 소모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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