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VR 시장에 ‘애플’ 본격 진입, 게임체인저 될까

애플, VR과 AR 혼합한 MR(혼합현실) 헤드셋 공개 VR 시장 이끌던 메타, 100억 달러 손실 후 1만1,000명 해고 단행 애플 시장 진입에 VR 시장 환영, 반면 가격 및 경쟁력에 대한 한계 지적도

오는 6월 5일(현지 시각) 개최 예정인 애플 연례행사 세계개발자회의(WWDC)로고/사진=애플

올해 혼합현실(MR) 헤드셋 공개를 앞둔 애플이 가상현실(VR)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장에선 애플의 주력 제품인 아이폰, 아이패드를 AR(증강현실) 및 VR과 접목할 것이라 예상하는 가운데, 기존에 VR 시장을 이끌었던 메타 외에 새로운 빅테크 기업의 진입에 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MR 헤드셋의 높은 가격, 게임 외 활용성 한계 등을 문제로 애플이 큰 경쟁력을 가지진 못할 것이라 전망하는 등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장밋빛 미래 꿈꾸던 메타버스에 드리운 먹구름, 메타는 손실 눈덩이

지금까지 VR 시장의 선두 주자는 메타였다. 메타는 지난 2014년 VR 헤드셋 회사인 오큘러스(Oculus)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했고 2016년 첫 VR 헤드셋 제품을 출시했다. 2021년에는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사명까지 바꾸며, 메타버스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메타 내 메타버스 사업 전진기지인 ‘리얼리티 랩스’가 재작년과 작년 각각 약 100억 달러(약 13조6천억원)가 넘는 적자를 내며 메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메타버스 회의론이 불거졌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각 팀에 호라이즌 워크룸(가상 회의실)에서 사무 회의를 할 것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원이 아직 VR 헤드셋을 구매하지 않았거나 호라이즌 연결 설정도 해놓지 않는 등 사내에서도 메타버스 이용률이 낮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마크 저커버그를 행복하게 하다(make Mark happy)’의 약어인 ‘MMH’라 부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메타는 결국 지난 9일 1만1,0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하며 사내 핵심 전략을 VR 대신 인공지능(AI)으로 변경했다.

메타 리얼리티랩스(메타버스 사업부) 영업손실 추이

메타버스가 정확히 뭔지 아직 학계나 업계에서도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VR 시장이 정체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이더리움 개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아직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를 정의하기 힘들다”며 “메타가 구상 중인 메타버스 생태계는 불발될 것”이라고 메타버스의 모호성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메타에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 VC 알티미터캐피탈의 CEO 브래드 거스트너도 지난해 10월 메타에 공개서한을 보내 “메타버스 사업 투자를 연 50억 달러(약 7조원) 이하로 줄이라”고 제안했다. 거스트너는 “사람들은 메타버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잘 모르며 (이러한) 미지의 미래에 1,000억 달러(약 136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은 실리콘밸리를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큰 규모”라고 비난했다.

이런 메타버스를 향한 본질적인 회의론은 VR 시장에 대한 투자 약화로 이어졌다. 글로벌 의료용 VR 기기 개발 스타트업 오소 VR(Osso VR)의 CEO이자 공동 설립자인 저스틴 바라드는 “2016년에는 기업의 사업명에 ‘VR’만 있어도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몇 달 후 VR기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부족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VR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퍼지며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자 사람들이 VR 시장에 대한 신용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우리의 MR 헤드셋은 메타버스가 아니다”, 메타와 다른 길 가는 애플

이처럼 VR 시장 전반에 회의론이 만연한 가운데 애플이 본격적인 VR 시장의 진입을 알리며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IT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오는 6월 5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연례행사인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리얼리티원’ 또는 ‘리얼리티 프로’로 명명된 MR 헤드셋을 선보일 예정이다.

MR은 VR과 AR의 장점을 혼합한 기술로 기존 VR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반투명 렌즈를 통해 AR처럼 현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외신에 따르면 애플의 MR 헤드셋은 사용자가 디지털 크라운 형태의 다이얼을 통해 VR 기능과 AR 기능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메타의 ‘메타 퀘스트 프로’가 수평 106도의 시야각을 제공하는 것과는 다르게 수평 120도의 시야각을 제공한다. 또 착용자의 동공 간 거리를 계산해 소형 모터로 내부 렌즈의 위치를 자동 조정하는 기능도 탑재될 예정이다.

애플이 내부적으로 MR 헤드셋의 기본 앱 명칭을 코프레즌스(공현존감)로 정했다는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마치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메타버스의 비전을 제시한 것처럼 애플 역시 메타버스와는 다른 MR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는 “애플 CEO인 팀 쿡이 MR을 얘기하면서도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회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8년 애플의 키노트 행사에서 팀 쿡 애플 CEO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애플

애플의 VR 시장 진출에 쏟아지는 상반된 시각

애플의 진입을 두고 시장은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몇몇 투자자들은 메타와의 차별점을 가진 애플만의 생태계에 주목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에 MR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VR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VR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한 부스트 VC의 설립자인 아담 드레이퍼는 “애플은 비주류 아이템들을 순식간에 주류 아이템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며 “애플의 진출이 더 많은 스타트업의 탄생과 10억 달러(약 1조4천억원), 20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가 시작될 것”이라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애플의 진입으로 VR, AR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재도약할 기회를 얻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벤처 리얼리티 펀드의 공동 설립자이자 모바일 게임 회사 플레이퍼스트(Playfirst)의 전 임원인 마르코 드미로스는 애플과 같은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인해 관련 스타트업이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미국 스타트업 시장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과의 인터뷰에 응한 투자자들과 스타트업들 역시 VR 시장 점유율 선점을 위한 애플과 메타의 기술 경쟁이 VR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다른 곳도 아닌 애플 내부에서 애플의 MR 헤드셋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제기돼 화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애플의 일부 직원들이 MR 헤드셋의 시장성과 실용성, 가격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고 이러한 의문 때문에 일부 직원들이 관련 프로젝트에서 이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보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도 애플의 디자인팀에서 MR 헤드셋 출시를 미루자고 건의했으나 애플 경영진이 기존의 일정을 고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과거 애플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였던 마이클 가텐버그가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 기고를 통해 애플의 MR 헤드셋이 ▲높은 가격 ▲짧은 배터리 사용 시간 ▲게임 외 활용성 한계 등의 이유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애플의 MR 헤드셋은 최소 3,000달러(약 395만원)에서 최대 4,000달러(약 527만원) 이상으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애플의 진입으로 VR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예견된다는 점이다. 시장 분석기관 CCS인사이트의 분석가 레오 게비(Leo Gebbie)는 내년에도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AR, VR 헤드셋 시장이 애플의 등장으로 단번에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게비는 “하룻밤 사이에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애플”이라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굵직한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참담한 실적을 안은 채 철수한 VC 시장이 독보적인 전자 기기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의 진입으로 다시 뛰어오를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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