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더리펀드’ 관심 높아졌지만, 이커머스엔 여전히 ‘먹구름’

세컨더리펀드 관심 ↑, 정부도 나섰다 VC 인플레이션 종료, 여기서 ‘기회’ 본 운용사들 ‘중개’ 사업 기업가치 하락, 이커머스 계열 고전 면치 못할 듯

사진=메타인베스트먼트, 위벤처스, DT&인베스트먼트, DSC인베스트먼트

국내 세컨더리 전문 운용사 메타인베스트먼트가 내달 1,000억원을 목표로 LP지분유동화펀드 조성에 나선다. 세컨더리펀드란 사모펀드(PEF)나 벤처펀드 등이 보유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펀드를 의미한다.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기존 투자자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산을 매입하려는 신규 투자자 간 중간 창구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 세컨더리펀드다.

세컨더리펀드 운용사, LP 모집 ‘마중물’로 나선다

메타인베스트먼트는 내달 말 LP지분유동화펀드인 ‘메타세컨더리펀드 제2호 PEF’를 결성할 예정이다. LP지분유동화펀드는 기존 벤처펀드의 출자자(LP) 지분을 인수하는 세컨더리펀드다. 최근 금리인상 및 경기 침체 등이 심화되고 자금 유동성이 위축됨에 따라 벤처펀드에 묶인 돈을 시급히 현금화하려는 LP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실 일반 세컨더리펀드는 근 10년간 활성화되지 못했다. 정책적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단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3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밴처캐피탈(VC) 업계의 중간 회수시장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이며 세컨더리펀드의 화려한 부활이 시작됐다. 당시 중기부는 각 정부 기관과 함께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고, 이 중 세컨더리펀드의 비중은 약 5,000억원으로 가닥이 잡혔다.

당시 가장 큰 문제로 여겨졌던 건 LP 모집이었다. 통상 세컨더리펀드는 구주를 인수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자금을 비롯한 국민연금 등 대형 LP들은 세컨더리펀드 LP로 잘 나서지 않는다. 실제로 세컨더리펀드의 주요 LP였던 은행, 증권사 등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자금이 묶이며 한동안 벤처펀드 출자자로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에 메타인베스트먼트 등 세컨더리 전문 운용사가 마중물 역할로서 선두에 섰다. 메타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한국성장금융의 LP 지분 세컨더리펀드 위탁운용사에 선정된 바 있으며, 국내 주요 금융사들로부터 출자 확약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운용 중인 펀드 9개 중 6개가 LP지분유동화펀드이기도 하다. 메타인베스트먼트는 펀드가 조성되는 대로 빠르게 투자에 돌입할 방침이다. 이에 업계에서도 세컨더리펀드가 보다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세에 맞춰 세컨더리펀드 역량 높이는 기업들

세컨더리펀드 전문 운용사는 메타인베스트먼트 외에도 더 있다. 지난해 12월 위벤처스는 510억원 규모의 신생 세컨더리펀드를 결성해 4개월 만에 약정총액의 약15%를 소진했다. 세컨더리펀드를 찾는 기관이 그만큼 급증했다는 방증이다. 회수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다 보니 그 대안적 성격인 세컨더리펀드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 탓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에이벤처스도 처음으로 세컨더리펀드 ‘에이벤처스 밸런스 S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금리 인상 등 대외 시장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투자 기회가 더욱 증가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그런 만큼 에이벤처스의 운용 전략은 세컨더리 투자 중심이다. 에이벤처스는 당시 “세컨더리 투자는 펀드 AUM(Asset Under Mangement, 총관리자산)의 5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세컨더리펀드 역량을 보다 강화하는 곳도 있다. DT&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LP지분유동화펀드 등 세컨더리펀드 운용 이력이 있는 운용역을 영입했다. 아울러 DSC인베스트먼트는 올해 회수와 펀드 레이징을 전담으로 하는 조직을 새롭게 설립했다. 이는 자금회수 역량을 키워 세컨더리펀드 투자 수요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컨더리펀드, 하나의 ‘트렌드’ 됐다

현재 세컨더리펀드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회수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다수의 LP 및 및 위탁운용사(GP)가 대안으로 세컨더리펀드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2021년까지는 VC 업계로 막대한 자금이 쏠리며 기업가치 인플레이션이 만연했다. 스타트업들이 원하는 밸류로 투자 유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대로 된 검증 절차 없이 기업가치만 끝없이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금리가 상승하는 등 시장 상황이 급변할 당시 기업가치는 급락에 급락을 면치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미노처럼 무너진 스타트업들은 다시금 일어설 기력을 잃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왕관을 채 놓지 못하는 탓이다. 각 세컨더리펀드 운용사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투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만기를 앞둔 벤처펀드가 상당히 많다는 점도 세컨더리펀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2016년 이전 대비 그 이후부터 국내 벤처투자 활성화 및 글로벌 유동성 증가로 VC조합은 급성장을 이뤘다. 해당 조합들의 만기가 통상 7~8년임을 고려하면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만큼, 여기서 투자 기회가 다수 발생할 것으로 기대가 쏠린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정부도 세컨더리 투자 활성화에 나섰다. 정부는 세컨더리펀드에 출자하는 펀드 규모를 오는 2027년까지 총 1조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중기부 차원에서 모태펀드 출자 대상을 일반 사모펀드도 출자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벤처투자 및 벤처투자모태조합 관리 규정’을 개정하기도 했다. 세컨더리펀드는 주로 일반 사모펀드인 만큼 세컨더리펀드의 활성화를 통해 모태펀드 출자 대상이 확대되고 VC 생태계에도 활기가 차오를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이커머스 VC는 여전히 고난 면치 못할 듯

다만 ‘밑 빠진 독’이란 인식이 강한 이커머스 계열 VC는 세컨더리펀드 투자에서도 다소 외면받을 것으로 보인다. VC 업계에 따르면 연초 상장 계획을 철회했던 컬리, 오아시스 등을 비롯해 무신사, 오늘의집, 브랜디, 아이디어스 등 이커머스 기업들의 구주가 매물로 나왔거나 나올 가능성이 있다. 대체로 초기 투자자들이 지분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기대치를 낮춰서라도 투자 기업 지분을 넘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고민은 세컨더리펀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금 유동성이 줄어든 후 이커머스 등 ‘중개’ 성격의 사업은 기업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후속 자금 모집에 애를 먹으며 사업 동력이 거의 상실된 곳도 적지 않다. 일례로 여성 패션 쇼핑앱 브랜디는 물류센터 투자를 위해 대규모 계약금을 지불했지만 부동산 경기 하락, 후속 자금 모집 불발 등으로 잔금을 납입하지 못했다. 마켓컬리 또한 대출, 신규 투자, 대기업에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됐지만 일단은 기존 투자자가 나서 급한 불만 끈 상태다.

세컨더리펀드 등 투자자 입장에선 웬만큼 싼 가격이 아니면 이커머스에 선뜻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세컨더리 거래를 해본 곳들은 만기가 가까워지거나 청산을 앞둔 펀드에 질 좋은 자산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보릿고개를 지나는 이커머스 기업들은 투자자의 시선 바깥에 나돌 확률이 높다.

이와 관련해 세컨더리펀드 결정 완료를 앞둔 한 대형 VC 소속의 심사역은 “시장에 나와 있는 이커머스 기업 중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하는 곳도 간혹 있다”면서도 “원하는 기업가치가 크게 낮아진 것도 아니고, 경영 상황이 나빠져서 나온 곳이 대부분인 터라 구주 거래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이커머스는 신주 투자를 차치하더라도 구주 인수마저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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