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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in유럽] 독일 ② 유럽을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스타트업의 중심

독일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 우수 상품 출원하는 기폭제로 작용 독특한 법인 ‘1유로 유한회사’ 제도로 전 세계 창업자 독일로 이끌어 챗GPT로 촉발된 AI 패권 경쟁 속, 생존 위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해야

지난 20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오는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규모의 정보통신기술 기반 스타트업 행사 ‘Viva Technology 2023’에 참여할 스타트업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Viva Technology’는 스타트업과 기술 리더, 기업인, 투자자들을 연결하고 혁신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로 2016년부터 프랑스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은 1개 국가와 체결하는 최고등급의 파트너십인 ‘올해의 국가(Country of the Year)’로 참여하게 됐다.

이처럼 해외 자본 유치와 일자리 창출 등 스타트업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주목받으면서 글로벌 창업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적극적인 인재 풀 구애정책에 따라 실리콘밸리와 베를린을 비롯해 파리, 런던, 스톡홀름 등 주요 도시의 외국인 활동 비율은 이미 50%를 넘어섰다. 이뿐만 아니라 칠레, 이스라엘, 싱가포르, 인도에서도 각종 인센티브를 내세우며 글로벌 기업과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EU 단일시장으로 묶여 있어 무역 장벽이 없는 유럽의 경우 그 경쟁 양상이 더 뜨겁다. 이 가운데 제조업 기반의 독일 기업은 변화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 스타트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자 했고 결국 성공했다. 국적을 초월한 인재 및 기업 유치전략, 그리고 규제 혁파 덕분이다.

글로벌 기업을 키운 인큐베이터

유럽 스타트업의 허브로 주목받고 있는 독일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대기업의 사회 육성 프로젝트 일환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말 그대로 ‘스타트업의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정책과 대기업의 노력은 청년 스타트업이 우수한 상품을 출원하는 기폭제로 작용했고 유럽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적 브랜드로 인정받는 결과를 낳았다.

스타트업 조사기관 스타트업블링크(StartupBlink)가 발표한 ‘2022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지표’에 따르면 독일은 스웨덴에 이어 유럽에서 스타트업에 가장 적합한 생태계를 보유한 국가로 평가됐다. 실제로 유럽 내 유니콘(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기업)의 25%가 독일에서 탄생했다.

독일 스타트업 성장의 핵심 요소로는 우수한 자금 조달 여건이 꼽힌다. 또한 기업투자자에 의한 M&A가 88%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된 만큼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용이하다. 여성기업인 롤모델을 제시하는 ‘여성기업 프로그램’, 대학 창업 지원금을 지원하는 ‘EXIST 프로그램’ 등도 기반이 됐다.

로켓인터넷 창업자 샘버 3형제/사진=Getty Images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로켓인터넷’도 독일 스타트업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로켓인터넷은 시행착오 비용과 실패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우버, 아마존 등 글로벌 혁신 기업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모방해 신흥국 시장에 진출하는 ‘복제 전략’으로 유명하다.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이탈리아 출장에서 에스프레소 카페를 본 후 영감을 얻어 창업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한때는 ‘클론팩토리’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으나 로켓인터넷이 만들어 낸 스타트업 중 유명 기업들도 상당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한 음식 배달서비스 ‘요기요’ 역시 로켓인터넷이 한국에서 만든 스타트업 브랜드다. 현재 로켓인터넷은 일종의 지주회사격으로 브라질, 인도와 같은 신흥국을 포함해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수백 곳의 자회사를 두고 있으며 업종도 일반상거래뿐 아니라 의류·숙박·음식 등으로 영역을 무한 확장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인 잘란도, 딜리버리 히어로, 헬로 프레쉬, 홈24 등도 로켓인터넷의 투자를 받았다. 이 밖에 식료품 배달앱 스타트업 ‘고릴라스’를 비롯해 오디오 플랫폼 ‘사운드 클라우드’, 유럽이 주목하는 핀테크 스타트업 ‘N26’ 등도 로켓인터넷 지원 아래 성장했다.

창업자를 독일로 이끄는 힘, ‘디지털 허브 이니셔티브’와 ‘UG’

독일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은 자금 후원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2016년 당시 경제기술에너지부 장관이었던 지그마르 가브리엘(Sigmar Gabriel)의 제안으로 스타트업, 투자가, 중견회사, 전문가들이 쉽게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디지털 허브가 설립됐다. 특히 연방경제에너지부는 스타트업과 대중소기업 및 연구기관의 협력촉진을 위한 ‘디지털 허브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으며, 창업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창업자 플랫폼도 구축해 운영 중이다.

정부의 과감한 제도 개선도 많은 창업자를 독일로 이끌었다. 독일에는 ‘1유로 유한회사’라는 독특한 형태의 법인 회사가 있다. 보통 독일에서 법인을 세울 경우 자본금 25,000유로(약 3,600만원)를 납입하고 설립하는 GmbH(유한책임회사)가 일반적이지만, 이는 막 창업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독일 정부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2008년부터 자본금 1유로만 있어도 세울 수 있는 미니 유한회사 격인 UG를 신설했다.

이후 창업자 대부분 처음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UG로 회사를 설립한 뒤 이익금을 쌓아 자본금을 마련하거나 투자유치를 통해 GmbH로 변경한다. 한국인 창업기업인 이지쿡 아시아 역시 처음 UG로 설립한 후 추가로 자본금을 납입해 GmbH로 전환한 바 있다. 소자본으로 유한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점은 초기 창업자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했고 15년이 지난 지금, 150,000개 이상의 UG가 설립되면서 독일은 스타트업 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정책의 유연성이 돋보이는 사례다.

2023 독일 스타트업 트렌드

독일스타트업연방협회의 ‘2022 독일 스타트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독일 스타트업 업종 분포도에서 정보통신기술(IT) 분야가 29.7%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헬스케어(10.6%)와 식품·기타 소비재(10.2%)가 뒤를 이었다. 평균 기업 연령은 작년 기준 2.6년이었던 것에 반해 올해에는 소폭 상승한 2.8년으로 조사 됐다. 스타트업 설립자의 성별은 약 80%가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성 설립자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올해 역시 IT 분야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독일은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들어서면서 재택근무와 화상 회의 등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이른바 ‘디지털 전환(DX)’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대부분 기업에서 DX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스타트업블링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IT 분야 종사자의 약 23.8%가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DX 플랫폼으로 인공지능(AI)을 꼽았고, 사물인터넷(IoT)과 웹3.0, 메타버스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최근 OpenAI의 챗GPT로 촉발된 AI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엔진 빙(Bing)과 웹브라우저 엣지에 OpenAI의 대화형 AI를 적용한 챗GPT 기반의 뉴빙을 출시했고, 구글도 AI 챗봇 바드(Bard)를 대항마로 내놨다. 이어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로 대표되는 중국 빅테크 기업에서도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를 하나둘 공개하고 있는 만큼, AI 챗봇이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지난 2월 27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데뷔 컨퍼런스에서 하이퍼클로바X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네이버클라우드

생태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종은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전 세계 IT 공룡 기업들은 거액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 만큼 AI 기술이 진화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3월 출시된 GPT-4는 대화 메모리나 추론 능력 등 여러 방면에서 챗GPT 3.5보다 월등히 향상됐음은 물론, 이미지를 인식하는 멀티모달 기능도 탑재됐다. 일론 머스크 역시 최근 스타트업 ‘X.AI’를 미국 네바다주에 설립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카카오 등 한국어 특화 모델을 기반으로 AI 패권 경쟁에 발을 들였다. 특히 네이버의 경우 챗GPT보다 한국어 데이터를 6,500배 이상 학습한 ‘하이퍼클로바X’ 공개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스타트업은 온갖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최근 글로벌 100위 안에 드는 사업 모델 가운데 70% 이상이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사업을 할 수 없거나 조건을 바꿔야 했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여전히 척박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경쟁력이 약한 이유는 인재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정부 지원금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정책 자금은 ‘혈세 낭비’, ‘눈먼 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고 넘친다. 그러나 각종 규제로 혁신의 날개가 꺾인 한국은 ‘스타트업의 무덤’으로 불린다.

스타트업은 향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도약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 성장의 싹을 자른 규제로 인해 우리나라는 이미 모빌리티 산업에 뒤처져 있으며, 원격 진료 서비스와 같은 분야에서도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진=Kodak

코닥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필름 사업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해 디지털 사업을 적극적으로 키우지 않았고, 20년 동안 세계 1위 휴대폰 제조기업으로 군림했던 노키아는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혁명의 시기에 오히려 일반폰 라인을 늘리는 선택을 했다. 결국 혁신을 외면한 이들 기업은 ‘추락’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두 기업의 몰락은 성공에 안주해 새로운 혁신을 이끄는 기업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도태되는, 바로 ‘혁신가의 딜레마’다.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폭스바겐, 도이치 텔레콤, 바이엘 등 많은 독일 기업은 혁신의 최전방에 있는 스타트업에 대한 적극 투자와 함께 창업 지원 플랫폼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찰스 다윈은 ‘생태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고 했다. 정부는 스타트업을 ‘혁신 성장의 주역’이라고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통한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로서의 고민을 해야하는 시점이다. 뛰어난 글로벌 인재들이 창업하기 좋은 나라로 변화하지 않고는 미래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배워야 하는 최우선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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