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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in유럽] 독일 ①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의 도약

베를린, 한 해 500개의 신규 스타트업이 만들어지는 혁신의 심장 청년 스타트업 유치를 통해 도심의 가치를 끌어올린 ‘팩토리 베를린’ 베를린의 성장은 독일 정부의 국적을 초월한 인재 유치 전략 덕분

최근 국내에서는 해외 스타트업들의 혁신 역량을 벤치마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특히 유럽 권역에서 ‘스타트업이 강한 도시’로 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름, 핀란드 헬싱키, 이스라엘 텔아비브 등이 손꼽히는 가운데, 최근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도시로 ‘베를린’을 꼽으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스타트업 조사기관 스타트업블링크(StartupBlink)가 발표한 ‘2022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 지표’에 따르면 독일은 스웨덴에 이어 유럽에서 스타트업에 가장 적합한 생태계를 보유한 국가로 평가됐다. EU 내 도시를 기준으로 하면 프랑스 파리에 이어 베를린이 2위다.

스타트업의 성지로 떠오른 베를린의 매력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Berlin ist arm, aber sexy).” 지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독일 베를린의 시장을 역임했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2000년대 들어 극심해진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베를린을 예술과 젊음의 도시로 탈바꿈하고자 내건 슬로건이다. 실제로 베를린 시정부에서는 예술가 및 젊은 창업가들을 적극 지원하며 도시 재생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베를린은 전 세계 창업자들을 집결시키는 ‘스타트업 성지’가 됐다.

독일 스타트업 모니터(DSM)에 따르면 독일 내에는 2022년 기준 1,976개의 스타트업이 존재한다. 특히 유럽 스타트업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베를린은 한 해 500개의 신규 스타트업과 8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혁신의 심장으로, 벤처캐피털(VC)의 베를린 스타트업 투자액은 31억 유로(약 4조3천억원)에 달한다. 2022년 기준 약 110억 유로(약 15조7천억원)의 자금이 베를린 스타트업에 투자금으로 유입됐으며, 현재 독일의 약 17% 달하는 스타트업이 베를린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의 35%가 베를린에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매력적 도시인지 알 수 있다.

베를린의 거리 예술/사진=domingo leiva

이처럼 베를린이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이유는 베를린의 국제적 개방성에서 찾을 수 있다. 베를린은 창업자의 약 43%가 외국인으로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스타트업 종사자 중 약 60% 이상이 독일 이외의 국적을 보유한 외국인일 정도로 외국인 친화적인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돼 있다. 또한 외국인 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비자신청에 있어 77%의 높은 비자 발급률 및 빠른 비자 발급기간을 기록하고 있다. 다국적 인력이 모여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만큼 스타트업과 관련된 언어는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으며, 외국인에게도 관용적인 스타트업 지원 정책과 글로벌 인력도 즐비하다. 이뿐만 아니라 주요 유럽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와 강력한 학술 및 연구 인프라, 자유로운 이민 정책 등의 요인이 합쳐져 유럽에서 가장 흥미롭고 역동적인 기술 현장 중 하나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의 혁신가와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독일의 ‘스타트업 에코시스템’ 또한 스타트업 붐 조성에 기여했다. 우수한 인재, 투자 환경,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다. 베를린의 다양한 인큐베이터,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오피스), 액셀러레이터는 이러한 요소를 극대화 시키는 견고한 스타트업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위워크, 마인드 스페이스, 팩토리 베를린과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는 매일 저녁 인재와 아이디어, 그리고 투자자가 만날 수 있도록 밋업 행사를 개최한다. 투자 또한 단계별, 분야별로 투자자들이 세분화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인 창업기업 이지쿡 아시아는 베를린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에서 초기 아이디어를 키우고, 팩토리 베를린을 통해 네트워크를 확대했으며, EDEKA 푸드테크 캠퍼스에서 지원을 받았다.

팩토리 베를린/사진=국토교통부
팩토리 베를린/사진=commons.wikimedia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자리에 세워진 ‘팩토리 베를린’

이렇듯 런던, 스톡홀름, 파리 등 스타트업에 강세를 보이는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경제 규모가 작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도시였던 베를린이 급속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다.

2014년 구글의 100만 유로(약 14억원) 투자를 통해 설립된 코워킹 스페이스 ‘팩토리 베를린’도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에 유수한 청년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일조했다. 청년 스타트업 유치를 통해 도심 가치를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팩토리 베를린은 지난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벤치마킹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간 베를린은 독일의 정치적 수도일 뿐 산업·경제적 측면에서는 동서독 통합 이후에도 별다른 기반이 없었다. 저성장과 인구 정체로 양적 공급 위주의 도시 확장이 한계에 봉착하자 베를린 시정부는 슈프레강 주변을 중심으로 팩토리 베를린을 만든 뒤 창업기업 유치에 나섰다. 창업자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료, 대출 혜택 등은 각국의 젊은 인재들을 모이게 했고, 베를린을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로 바꿔 놨다.

동서독을 나누는 ‘베를린 장벽’이 있던 베르나우어 거리의 맥주 양조장을 개조해 만든 팩토리 베를린에는 독일 온라인 은행 N26, 글로벌 음악 플랫폼 사운드 클라우드를 비롯해 트위터, 우버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과 경영 컨설팅 회사들이 상주하면서 멘토로서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팩토리 베를린이라는 이름은 미국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본인의 작업실을 지칭했던 ‘팩토리’에서 착안했다. 혁신을 선도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이 요소가 창의성과 예술성이라는 것이 이름에 그대로 녹아있는 셈이다. 실제로 팩토리 베를린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으며, 매년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들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스타트업의 컬래버레이션을 돕기도 한다. 이처럼 베를린은 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에 젊고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유럽을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혁신 스타트업 중심 도시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사진=실리콘 알레 홈페이지

혁신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실리콘 알레’

미국에 실리콘 밸리가 있다면 독일에는 실리콘 알레(Silicon Allee)가 있다. 실리콘 알레는 베를린의 스타트업 씬을 전 세계 창업자들과 연결하는 혁신 생태계다. 2011년 스타트업들의 월간 밋업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이제 베를린 중심부인 미테지구에 거대한 스타트업 단지로 성장했다. 독일이 IT 창업 붐을 일으키고자 노력한 결과, 베를린은 정부의 지원과 함께 고학력 인재가 풍부한 점과 값싼 부동산 가격, 저렴한 물가 등을 장점으로 갖추게 됐다. 기업을 시작하기에 필수인 요소를 두루 갖추며 창업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실리콘 알레는 베를린에 진출하는 전 세계 창업자들에게 창업자금을 직접 지원할 뿐만 아니라 VC(벤처캐피털)와 엔젤 투자자 네트워크를 통해 후기 단계의 창업자들이 투자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울러 창업자들이 베를린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아파트와 사무실을 임대하는 실질적인 사업과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도 상시 제공한다. 이러한 시설과 기반 모두 실리콘 알레 공간 안에 있다. 여기에 더해 베를린 기술 클러스터와의 네트워킹도 실리콘 알레의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독일 스타트업 투자 유치 건수의 40%, 베를린에서 체결

베를린이 가난한 예술가의 도시에서 스타트업의 성지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정부의 국적을 초월한 인재와 기업 유치 전략도 한몫했다. 현재 베를린 시정부를 비롯해 독일 연방정부, 크게는 EU 단위에서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00억 유로(약 14조원) 예산을 투입해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제 발전에 있어 스타트업의 막중한 역할을 인식한 독일은 자국 내 스타트업 유치를 위해 연방 및 시정부가 지원하는 공공정책뿐만 아니라 VC 등 이해관계자들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10년 장기 프로젝트인 ‘미래기금’ 조성 등을 통해 투자의 선순환을 높임으로써 지속적인 투자-재투자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미래기금 프로그램인 유럽회복계획은(ERP)은 독일 개발은행이 기존 2,500만 유로(약 357억원)였던 펀드당 최대투자금을 2배로 늘려 5,000만 유로(약 713억원)까지 VC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이끈다. 또한 독일미래기금(GFF)은 유럽 투자펀드 프로그램과 함께 35억 유로(약 5조원)를 투입해 VC들이 펀딩 관리구조를 개선하고 시리즈 C, D 이후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딥테크 미래기금은 10년간 10억 유로(약 1조5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계획으로 하고있다.

이 밖에도 최대 5만 유로(약 7,200만원) 상당의 ‘창업 보너스’, 1만5,000유로(약 2,200만원) 상당의 수공업자 대상 ‘마이스터 창업 보조금’, 혁신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려는 개인 투자자를 도울 ‘인베스트 벤처캐피탈 보조금’, 학생과 연구자의 창업을 돕는 ‘EXIST 창업인 장학금’도 운영한다. 특히 EXIST 창업인 장학금은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 및 연구자를 지원하는 연방 경제에너지부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유럽 사회기금에서 공동 자금후원을 받는다. 베를린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에게 대학교가 인건비와 인프라,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베를린 스타트업 보조금’도 있다.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독일 스타트업 투자금 유치 건수의 40%가 베를린에서 성사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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