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신흥도시의 필수 조건

뉴욕, 샌프란시스코 중심의 글로벌 VC 생태계 변화
지리적·문화적으로 다양한 도시에서 테크기업 성장
지역산업·대학·규제 환경 등 VC 생태계 번영에 영향

그간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와 뉴욕이 글로벌 벤처캐피탈(VC) 생태계를 주도해 왔지만 최근 노스캐롤라이나 롤리(Raleigh)부터 이스탄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시에서 테크 커뮤니티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VC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두바이·디트로이트·베를린 등 VC 신흥도시로 급부상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이 발표한 ‘VC 생태계 순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가 VC 그로스 스코어(growth score) 72.8로 1위에 올랐다. 최근 5년간 두바이의 스타트업의 총 거래 건수는 815건이며, 거래액은 38억 달러(약 49조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에는 72.5 스코어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가 올랐으며, 독일의 테크시티 베를린과 명문대가 밀집해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주도 롤리가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이들 지역은 최근 전 세계가 주목하는 테크 허브로, 미래 지속가능성과 투자 가치 측면에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17~2023년 세계 VC 생태계 순위(2023년 6월 기준)/출처=Pitchbook

지역 핵심산업의 기반시설·인프라 등 영향

신흥도시들 가운데 휴스턴과 디트로이트는 전통적으로 에너지와 자동차 산업을 지역 경제의 근간으로 한다. 이 도시들은 기존 산업의 기반시설과 인프라, 기업들을 기반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성장시켜 왔다. 일례로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디트로이트에서 포드, 크라이슬러, 제너럴모터스 등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3사의 존재는 신생기업들이 유능한 인재를 모으고 자본을 확보하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전략적 제휴와 투자의 원천이 됐다. 2020년 설립된 모빌리티 전문 VC 어셈블리 벤처스(Assembly Ventures)의 설립 파트너 제시카 로빈슨(Jessica Robinson)은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VC 생태계의 번영에 있어 특별한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10년 전만 해도 디트로이트는 글로벌 금융 위기와 자동차 노조의 파업, 내연기관 자동차의 퇴조가 맞물려 한때 쇠락의 길을 걷는 듯했지만 이후 구글, 소프트뱅크 등 최첨단 테크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소를 이전하면서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허브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설립된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 리비안(Rivian)도 디트로이트의 지역 인프라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리비안은 설립 이후 포드, 콕스 오토모티브(Cox Automotive) 등 자동차 기업을 비롯해 티 로 프라이스(T.Rowe Price), 코트 매니지먼트(Coatue Management), 포드자동차기금(Ford Motor Campany Fund) 등 VC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고 현재는 시가총액 152억 달러(약 1,980억원)의 주목받는 전기차 회사로 거듭났다.

롤리·난징, 지역 명문대학에서 인재 수급

롤리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UNC Chapel Hill),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NC State) 등이 소재한 캠퍼스타운으로, 최근 5년간 롤리-더럼-채플힐을 잇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 지역을 중심으로 VC 생태계가 급성장했다. 지난해 롤리에 소재한 게임업체 에픽게임즈는 메타버스 사업을 위해 소니그룹과 레고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4,700억원)를 투자받았으며, 올해 초에는 롤리의 스타트업들이 불 시티 벤처 파트너스(Bull City Venture Partners), 해터러스 벤처 파트너스(Hatteras Venture Partners) 등 지역에 기반을 둔 투자사들로부터 1억2,600만 달러(약 1,300억원)의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중국 난징은 난징 대학교와 난징 기술대학교가 위치한 지역으로 매년 두 대학은 수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난징의 스타트업에 취업함으로써 지역 생태계의 성장동력이 됐다. 실제 지역 대학으로부터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를 확보한 난징의 스타트업들은 최근 5년간 총 129억 달러(약 16조8,000억원)를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일리야 스트레부라예프(Ilya Strebulaev) 교수는 “VC 생태계의 성장을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을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타트업 등 지역의 신생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얼마나 확보했는가는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혁신 촉진하는 규제 환경도 VC 생태계 성장에 기여

지난해 세계 3위의 가상화폐거래소인 FTX가 붕괴되기 전까지 전 세계 가상화폐 스타트업들은 앞다퉈 두바이에 사무실을 개설한 바 있다. 두바이의 규제 환경이 블록체인 기업을 설립·운영하기에 매우 유리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의 알렉스 체하데(Alex Chehade) 두바이 총괄책임자는 “두바이가 가상화폐 산업과 관련해 규제의 명확성을 확보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두바이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의 체계적이고 혁신적인 규제 환경은 비단 가상화폐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UAE 정부가 글로벌 벤처기업의 유치를 위해 각종 세제 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장려책을 시행하면서 유망한 기업과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다. 2017년 VC 펀드로 15억 달러(약 1조9,500억원)를 확보하며 스타트업 및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급부상한 두바이는 최근까지도 막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함단 빈 모하메드 알 막툼 UAE 왕세자가 1억 달러(약 1,300억원) 규모의 VC 펀드 조성하면서 8,000여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지역 외에도 다양한 도시가 미래 성장가능성이 높은 VC 생태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분석기관인 스타트업 지놈이 발표한 ‘2023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텔아비브는 세계 5위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올랐다. 텔아비브는 지난해 투자회사 파가야 테크놀러지스(Pagaya Technologies)가 기업공개(IPO)를 통해 최고의 투자 수익을 기록하는 등 최근 2년 새 전체 생태계 가치가 2배 넘게 증가했다. 이어 싱가포르는 올해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하며 8위를 기록했다. 유니콘 기업의 수가 지난해 11개에서 18개로 늘어나면서 순위도 10계단 상승했다. 이밖에 미국 마이애미 23위, 인도 뭄바이 31위, 호주 멜버른이 33위, 스위스 취리히가 36위 등으로 신흥도시로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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