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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와 미국 달러 패권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감으로 동맹국들 불만 커져 강달러에 달러 자산 외환보유고 비중도 감소 중 자국 문제 넘어서 동맹국 사정도 고민해야 된다는 지적도

12일(현지 시간) 발표된 올 3월의 전년 대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5.0%를 기록했다. 다음 달에는 4%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 업계 관계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잡힌 만큼, 미 연방준비제도위원회(이하 ‘연준’)이 다가오는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한다. 오히려 대외 여건이 안 좋아지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 카드를 언제 꺼내 들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달러에 부정적인 대외여건

미국은 지난 2022년 내내 강력한 긴축 통화 정책을 펴며 금리 인상을 단행해왔으나, 내부적으로는 은행들이 타격을 입고 무너지면서 금융가에 불안이 확산되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동맹국들이 부담에 지쳐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어 러시아와 중국을 선두로 한 일부 국가들이 달러 패권에 균열이 될 수도 있는 신규 화폐 창설을 부르짖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은 2022년 금리 인상기부터 자국 화폐인 디나르로 석유 매각 대금을 받았고,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루블화로 지급 받았다. 이어 올 3월 말부터는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판매 대금을 위안화로 받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1944년 브레튼 우즈 체제를 구축한 이후로 주요 산유국이 석유 결제 대금을 달러화가 아닌 다른 화폐로 받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란과 사우디가 최초다. 앞서 이란, 이라크 등 일부 국가에서 미국 정부와의 불협화음 때문에 자국 화폐로 대금을 받았던 사례가 있기는 하나, 경제 제재와 무관하게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처음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러시아가 힘을 모아 신규 화폐를 만들겠다는 주장을 처음 냈던 지난해 5월만 해도 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라고 봤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협상 우위를 점하려는 러시아의 외교적 협상카드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올 2월 기고에 같은 내용을 언급하면서도 여전히 부정적인 견지를 놓지 않았다.

반면 미국 경제연구소(AIER) 피터 얼리(Peter C. Earle) 연구원에 따르면 이란, 사우디에 이어 브라질과 인도까지 신규 화폐에 동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국의 강달러 정책에 대한 주변국들의 피로감이 얼마나 높은 수위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73년에 스미소니언 협정을 통해 ‘브레튼 우즈 II’를 구축했던 것처럼 가까운 시일 내에 ‘브레튼 우즈 III’를 논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강달러에 되레 달러 보유고 비율 감소

강달러가 이어지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의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손해를 본 각국 중앙은행들이 평소에는 추가로 미 국채를 구매해 외환보유고를 유지했으나, 지난 2022년에는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달러 채권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외환보유고 중 달러 보유 비중은 2021년 1분기 들어 25년 만에 처음으로 60% 이하로 떨어진 이래 2022년 말 기준 54%까지 떨어진 상태다. 비중앙은행 보유 외환보유고를 제외하더라도 59.8%로 떨어지면서 조심스레 달러의 기축통화 역량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월가에서는 3월 CPI가 5.0%로 나온 만큼, 인플레이션 안정화 추세에 맞게 통화 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되는 모습이다. 오히려 금리 인하를 적절한 시점에 진행하지 않을 경우 탈달러(De-dollarization)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미국의 대외 정치적 위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쯤에서 동맹국들을 달래지 않으면 인도, 브라질, 사우디 등의 주요 G20 국가들이 중국, 러시아와 연대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채권 금리/출처=Financial Times

금리 인하, 언제부터 시작되나?

시장에서는 금리 하락을 선(先)반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장기채권 금리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보다 떨어진 상태고, 미국, 영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미 국채 금리는 지난 한 달 사이에 5년 장기채 기준 4.01%에서 3.54%까지 떨어졌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더불어 연쇄 파산이 이어지자 금리 인하 기대감에 3.39%까지 떨어졌다가 소폭 상승한 모습이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소식 없이 장기채 이자율이 0.47%나 움직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시장이 금리 인하를 선반영하고 있는 데다, 지난 3월 FOMC에서 파월 미 연준 의장이 금리 정책을 거시경제학계의 준칙에 따르겠다고 선언한 만큼, 시장 예측에 맞추는 형태로 정책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월가의 공통된 견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미 금리 인하를 해야 한다는 압박은 미 연준과 재무부에 공유되고 있는 생각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만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당면한 문제와 집값 거품이 진정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금리 인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인하 카드를 꺼내 드는 시점을 조율하는 데 고민이 집중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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