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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벤처대출로 스타트업 자금 통로 넓힌다

투자조건부융자 등 선진 벤처금융기법 도입
벤처펀드 SPC 설립 및 조건부지분 전환계약도 가능
국내 금융권도 ‘벤처대출’에 속속 뛰어드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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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스타트업을 위한 벤처대출이 가능해진다. 투자조건부 융자 및 벤처펀드의 투자목적회사 설립 등이 제도화되면서 민간 투자재원이 창업·벤처기업의 성장 자금으로 유입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민간 투자재원이 기업의 성장 자금으로 활발히 유입되는 만큼 스타트업의 숨통을 트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타트업 자금조달 경로 다각화

12일 중소벤처기업부는 투자조건부 융자, 벤처펀드의 투자목적회사 요건 등을 구체화하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투자조건부 융자 제도가 도입된다. 투자조건부 융자는 초·중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를 받기 전까지 자금 애로를 해소할 수 있도록 은행과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신기사) 등 금융기관이 소액의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고 저금리 융자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제도 시행을 위해 내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을 통해 500억원 규모의 투자조건부 융자 전용 자금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은 기업가치 산정이 어려운 초기 스타트업에 우선 대출을 해주고, 투자유치 시 지분 전환이 가능한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투융자 제도다. 후속 투자가 이어지지 않을 경우 대출 원리금을 상환받는다.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이 가능해짐에 따라 초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결정이 용이해져 민간 투자자금의 유입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는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이 벤처투자에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배포할 예정이다.

벤처펀드의 SPC 설립도 허용된다. 지금까지 벤처펀드의 차입이 제한돼 있었으나, SPC 설립이 가능해짐에 따라 대규모 투자재원을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됐다. 기술보증기금은 SPC의 금융기관 차입을 보증하는 ‘투자매칭 보증 프로그램’을 운영해 제도의 활성화를 지원할 방침이다. 이날 이영 중기부 장관은 “선진 벤처금융기법의 도입은 스타트업의 성장자금 애로를 해소하고, 벤처투자 생태계를 한 단계 고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벤처투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앞으로도 업계와 소통하며 필요한 지원과 제도개선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환영 입장을 밝혔다. 사정이 어렵다고 기업가치를 섣불리 낮추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벤처대출은 유용한 자금확보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투자조건부융자는 스타트업에게는 창업자의 지분 희석 없이 보다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금융기관은 스타트업의 성장에 따라 추가적인 수익도 발생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상호 발전적인 금융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벤처대출이란?

벤처대출은 대출기관이 스타트업의 후속 투자 가능성을 보고 3~5년간 저금리로 대출을 제공하되, 대출기관은 소액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취득하고 스타트업은 후속 투자 시 투자금을 상환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주로 초기 투자 단계인 시리즈 A~B 단계 기업이 많이 받는다. 이들 기업은 상대적으로 후속 투자 유치 가능성이 높고 부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지분과 자금을 맞바꾸는 투자 유치와는 달리, 벤처대출은 대출금의 일정 비율만큼의 BW를 가져가기 때문에 당장 지분 희석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 후속 투자 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어 급히 자금을 조달하려 기업가치를 낮추는 등 불리한 조건의 투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대출 기관 입장에선 부실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투자하면서도 심사 시 VC의 실사 자료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VC는 기존 주주로서 지분 희석 없이 추가 투자 비용은 낮추면서 투자사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벤처대출 시장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중심으로 은행형 벤처대출 상품이 자금공급 수단으로 활성화됐고, 수많은 유니콘 탄생에 기여했다. 미국에선 구글, 페이스북, 우버 등을 비롯해 테크 스타트업 40% 이상이 벤처대출을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어비앤비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위기로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자 벤처대출 형식으로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조달했고, 그로부터 8개월 뒤 5배가 넘는 기업가치(1,000억 달러·약 130조원)를 인정받아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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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0일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기술보증기금 ‘벤처 대출 연계 금융지원 업무협약식’에서 김인태 IBK기업은행 혁신금융그룹 부행장(왼쪽)과 김영갑 기술보증기금 상임이사(오른쪽)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IBK기업은행

금융권의 새로운 먹거리, ‘벤처대출’

최근 고금리 장기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금융권에서도 벤처대출 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먹거리를 물색하고 있다. 국내 벤처대출 시장에서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인 곳은 VIG파트너스의 크레딧 투자 부문인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이다.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은 지난해 6월 일찌감치 마이리얼트립이 발행한 BW를 520억원에 벤처대출 방식으로 인수한 바 있다. 사채 표면금리는 당시 인수금융 금리보다 2~3%p가량 높게 설정했고, BW는 전체 사채 발행 금액의 20%만 받았다. 여기에 마이리얼트립이 다음 라운드 투자 유치 시 사채 원리금을 가장 먼저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IBK기업은행도 지난해 12월 대출을 받기 어려운 유망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IBK벤처대출’을 내놨다. IBK벤처대출은 데스밸리(창업 3~5년차 기업이 겪는 경영난)를 겪고 있는 성장 잠재력 높은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브릿지론 성격의 자금을 공급하는 형태다. 미국 SVB의 대표상품인 ‘Venture Debt’를 벤치마킹한 투자조건부 융자상품으로, 일반 신용대출과 BW를 결합해 최대 10억원까지 자금을 지원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부실률을 관리하면서 혁신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대출과는 달리 투자를 위한 의사결정을 거쳐야 하나, 초기 기업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전향적인 상품이란 평이다.

지난 7월에는 기술보증기금과 벤처대출 연계 금융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부의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방안’ 추진과제 실행을 위한 후속조치로, 정책금융기관 간 스케일업 지원 연계성 강화를 통해 위축된 벤처투자 시장 활력 제고를 견인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보는 협약에 따라 기업은행이 추천한 IBK벤처대출을 지원받은 투자유치 기업에 벤처대출 연계보증을 지원한다. 연계보증은 벤처대출 기업의 추가성장 동력 안정성 제고를 위한 우대 보증상품으로, 투자유치 금액에 따라 최대 20억원까지 지원하며 △0.7% 고정보증료율 △100% 전액보증 등의 우대조치가 적용된다.

이번 정부 지원을 통해 융자형 벤처대출 시장이 활성화되면 지분형 벤처캐피탈 시장과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자금난에 허덕이는 스타트업에도 숨통을 티워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케일업 단계에서 지속 증가하는 소요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지분 투자를 유치하는 데 따른 시간 부담과 지분 희석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벤처대출은 보유 현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 이른바 ‘캐시 런웨이(Cash Runway)’를 연장해 주는 역할을 하는 만큼 양질의 스타트업이 자금시장의 어려움 때문에 실패하는 확률을 줄일 수 있어 궁극적으로 국내 유니콘 탄생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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