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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업에서 신뢰의 가치

금호그룹의 사례로 본 금융업에서 신뢰의 중요성 투자자 신뢰 무너뜨린 두 스타 자산운용사 대표에 관한 구설수 투자자 신뢰 회복에는 오랜 시간 걸려

사진=freepik

2006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막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통운이 매물로 나온 시점의 일이다. 당시 금호그룹은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하더라도 대우건설을 절대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2008년 인수 내용을 보면 그 약속을 깨고 24%의 대한통운 지분을 대우건설로 인수했다. 대우건설 인수에 이미 수조원의 자금을 모두 끌어 쓴 금호그룹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그 날로 시장에서의 모든 신뢰는 사라졌다.

그렇게 신뢰를 잃은 대우건설은 지금까지 14년간, 그 뒤로 오너가 바뀌었음에도 단 한 번도 그때의 주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최근의 기업가치 하락은 건설 경기 이슈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 시절 주가에는 ‘불신’이라는 단어가 끼어 있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기존 금호산업, 금호건설, 아시아나 항공 등의 물류, 건설업 내공에 더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10대 대기업으로 우뚝 솟았지만, 그렇게 시장의 신뢰를 잃고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금융위기까지 더해져 대한통운 매각, 대우건설 매각에 이어 알토란 같은 자산이었던 금호생명, 금호렌터카를 매각하고, 나아가서는 아시아나 항공을 매각했다. 심지어 금호산업에서 최대 3천억원의 자본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박삼구 회장은 구속되기에 이른다.

대우건설 인수 자체가 무리였다는 평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한통운에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대우건설을 포기하는 상황에 몰리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즉, 신뢰를 잃었던 탓이라는 것이 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사후적 평가라는 것이다.

스타 자산운용사 대표들의 불명예 퇴진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지난 6월 불법투자 의혹으로 물러났고, 이어 7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의 차명 투자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둘은 1세대 가치투자자, 동학개미운동 선구자, PB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 대표 펀드매니저 등의 각종 수식어를 지녔던 스타 자산운용사 대표들이었다.

두 스타의 구설수 이후 PB들은 속칭 ‘쩐주(100억 이상의 자금을 굴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더 이상 자산운용사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가속화하고 있는 글로벌 자금시장 경색만으로도 금융업계에 악영향을 미친 상태인데, 금융업에서 가장 핵심인 ‘신뢰’가 사라진 상황이 됐다.

투자업계의 ‘마바리’라는 비속어는 과장된 정보를 흘려 투자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놓고 혼자서 이익을 독차지하는 ‘사기꾼’을 뜻하는 업계 용어다. 타인의 자본을 바탕으로 수익을 공유하는 투자업계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사업 전략이나, 두 스타 운용사 대표들의 불명예스러운 구설수는 ‘쩐주’들에게 “믿었던 운용사도 ‘마바리’면 ‘마바리’ 아닌 운용사가 어디 있나?”는 불평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금융업과 신뢰와 소통

두 대표의 구설수에 관해서는 아직 금융감독원의 최종 조사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나, 여의도 증권업계 속어 중 하나인 ‘민정이'(타인 이름으로 증권사 직원들이 운용하는 주식거래 계좌)를 두 대표가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주는 ‘쩐주’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대표는 신뢰를 얻기 위해 긴 시간 소통에 관심을 기울였던 펀드매니저들이었다. 다양한 SNS 채널과 언론을 통해 고객과 밀접하게 소통했고, 덕분에 고객들의 신뢰도 높았다. 산이 높았던 만큼 골이 더 깊어진 상황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몇 년간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했으나 한두 차례의 사고로 시장의 신뢰를 잃은 펀드매니저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위의 금호그룹 사례처럼, 국내 10대 대기업도 신뢰를 잃으면 10년의 세월을 거쳐 조금씩 무너질 수 있다. 그만큼 투자자들에게 신뢰는 무서운 무형자산이다.

앞으로 자산운용업계가 신뢰를 회복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투자자금 경색이 악화되는 상황이라 더더욱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부디 두 대표가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거쳐 구설수를 툴툴 털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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