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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4차산업 헛발질 정책 ① – 학·석·박사 과정 5.5년? 유럽 사례

교육부,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 방안’ 발표 디지털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5.5년 만에 만든다? 탁상행정 아닌 현실적인 정책 내놔야

사진=freepik

지난 22일 정부가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 방안’을 발표했다. 다양한 인재가 디지털 전문성을 갖추도록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디지털 교육 체제를 일체 정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된 학생들을 대학에서 1학년에는 진로탐색, 2~3학년에는 연계기업 맞춤형 교육과정, 4학년 부트캠프 과정, 거기에 학·석·박사 연계 과정을 겨우 5.5년에 마무리하는 과정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일선에서 코딩 인력 수요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부분, 컴퓨터 공학을 비롯해 코딩이 교육과정의 필수인 다양한 공학, 자연대, 사회대 전공에서 코딩 교육을 굳이 대학에서 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물론, 그 코딩 교육이 실제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학계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학·석·박사 연계 과정을 겨우 5.5년에 마무리하겠다는 욕심이다.

인터넷 여론 중에는 “Yuji 박사라면 학석박 5.5년에 만들 수 있겠지. 간판만 박사면 다 박사로 보이나 보네” 같은 윤석열 행정부를 때리는 이야기도 있었다.

교육 기간이 짧은 유럽의 사례

유럽은 대학, 대학원 교육이 미국식 교육 시스템보다 훨씬 더 짧은 전통이 있다. 학부 3년, 석사 1년, 박사 1년 더 전공별 필수 수업을 들은 후 논문을 다 쓰고 나면 교수들 회의에 따라 졸업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렇게 짧게 운영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달리 교양 수업을 거의 듣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식 교육을 받은 한국인 중 가장 명망 있는 포지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 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라는 국제은행연합 기관의 연구 총괄(Head of Research)로 있는 신현송 박사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으로 학·석·박사를 1982년부터 1988년까지 단 6년 만에 마무리했다. 미국식 기준으로는 영화화될 만한 속도지만, 영국 시스템상 1980년대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봤을 때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경제학계 관계자의 평이다.

그 후 2000년에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로, 2006년에 프린스턴 대학교로 교수직을 옮기며 무려 12년간 여러 대학을 거쳐 리서치 펠로우, 자연계 대학원생들에게 ‘포닥(Post-Doc)’에 해당하는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장기간 해온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제학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사과정 중 필요한 기초적인 도구를 배운 상태일 뿐 그 외 실제 연구 역량이 충분히 쌓인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했던 것이 1980년대 유럽의 대학원 분위기였고, 실제로 연구역량을 갖추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최근 경제학 박사 졸업생들은 박사과정 중 첫 1~2년간 받는 수업을 거치고 나면 4~5년 이상 장기간 각종 연구역량을 기르고 논문을 쓰는 훈련을 거쳐야 비로소 박사과정을 졸업할 수 있다.

유럽도 최근 들어서는 모든 자연계열 학문이 미국식 포닥 과정을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씩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업에서 학점을 받은 것만으로 연구역량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은 학계 사정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선을 그었다.

코딩이 학·석·박사가 필요한 학문인가?

프로그래밍, 특히 일선 IT 업계에서 쓰는 프로그래밍은 굳이 학부 컴퓨터공학 이상의 교육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 통설이다. 심지어 특성화고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고졸 개발자 직원들이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개발자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개발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학교 교육이 전문적인 개발자 역량을 키우는 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코딩이 아니라 컴퓨터 공학에서 IT 기업 현장에 많이 쓰일 가능성이 높은 데이터베이스, 인공지능 등의 주제는 5.5년의 코딩 교육으로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 불과하고, 최소한 학부 수학과, 통계학과 수준의 고급 수학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들, IT 학원들이 끝까지 외면하고 있는, 하지만 AI 연구자들 사이에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에서도 인기 많은 인공지능 및 데이터 과학 관련 전공은 학부에서 수학 및 통계학 3년 과정, 석사는 2.5년간의 다양한 융합전공과정, 그리고 다시 3~4년의 박사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학제가 짧은 유럽에서도 불가능한 5.5년을 내세운 교육부의 정책 제안에 학자들이 “Yuji박사”라고 맹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실제로 인터넷 여론에서도 “코딩 말고 수학적 사고, 알고리즘적 사고, 귀납적 사고를 가르쳐야지”, “또 헛발질한다, 코딩은 제일 하류인 것도 모르는…” 같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상식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지난 정부의 과오를 그대로 범하는 정부의 4차산업 정책

지난 문재인 정부 내내 ‘4차산업혁명 지원’, ‘디지털 뉴딜’ 등의 캐치프레이즈에 맞춰 엄청난 정부 예산을 들어 교육과정 안팎으로 코딩 교육을 지원했다. 일선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 대부분이 코딩 훈련이 잘된 상태가 아니어서 수업의 퀄리티가 나빴던 부분도 무시할 수 없으나, 실제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부분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한 관계자는 행렬 개념을 이해해야 ‘Array’라는 데이터 구조를 가르칠 수 있는데, 심지어 고교에서도 행렬을 배우는 학생들이 일부에 불과한 상황에 초등교육에 ‘Array’를 가르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 관계자는 간단한 입출력으로 화면에 그래프를 띄우는 함수 명령어 몇 개를 가르치는 타협 수업 정도가 현재 학교 일선의 상황이라고 밝혔다.

탁상행정과 보고서 중심의 문화로 갑자기 국가의 4차산업 역량이 현격히 뛰어오를 수는 없다. 당장 내일 보고서가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 정책을 교육부에서 내줘야 일선 현장이 좀 더 응원의 목소리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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