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역대 최장 기간 순매도 공세…”15조원어치 더 남았다”

연기금이 국내 증시에서 50거래일 연속으로 주식을 내다팔며 역대 최장기간 순매도 기록을 이어갔다. 이 기간 순매도 금액만 약 15조 원에 달한다. 이처럼 연기금이 국내 증시를 짓누르자 개인투자자는 물론 자산운용업계에서도 연기금이 공공성을 위반했다며 “연기금의 운용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기금은 11일 주식시장에서 2845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닥시장에선 160억 원을 순매수했지만 유가증권시장에서 3005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날도 연기금은 오전까지 순매수를 이어가다가 오후에 순매도로 돌변했다. 동시호가 시간대인 오후 3시20분 직전까지 1000억 원대를 순매수하던 연기금은 이후 10분 만에 4000억 원어치에 육박하는 매물을 쏟아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의 순매도는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이달 8일까지 47거래일 연속으로 순매도에 나섰다. 연속순매도일수는 역대 최장기간으로 이 기간동안 팔아치운 금액은 14조9771억 원에 이른다. 연기금의 매도세가 자산배분 차원의 행동임을 감안할 때 증권업계에선 앞으로 연기금이 최소 15조 원대의 추가 매물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2021년 국내주식 목표비중은 16.8%로 2020년 대비 0.6%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따라 주식시장의 장기투자자인 연기금은 자산배분 비중을 목표에 가깝게 조정해야 한다. 2021년은 5년 단위 중기자산배분(2021~2025년) 원년이다. 이 자산배분원칙에 따라 국내주식 비중을 2025년 말까지 15% 안팎으로 단계별로 낮춰야 한다.
국민연금 국내 주식 자금을 위탁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국민연금 측에서 지난해 말 시장이 급등하며 주식 비중 축소를 전혀 진행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연초부터 강도 높은 포트폴리오 축소 지시를 내리고 있다”며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오전 매수, 오후 매도 전략도 포트폴리오 축소 과정에서 수익률 하락을 최소화하라는 운용 지시에 운용사들이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기금의 기계적인 매도가 끝없이 계속되면서 기관투자가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현재의 자산배분 계획이나 운용전략은 철강과 화학 등 경기순환주가 국내 시장을 이끌던 2000년대 수립된 것”이라며 “주가의 등락이 반복되는 이들 종목에서는 매도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고 필요할 때 되사는 전략이 유효하지만, 지금처럼 국내 증시가 성장주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는 오히려 기업들의 주가 모멘텀을 깨뜨리는 결과만 낳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이달 4일 성명서를 통해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원칙인 수익성과 공공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며 “최근의 ‘매도 폭탄’은 이 가운데 공공성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투연은 “국민연금은 규정상 주식 비중을 목표의 5% 범위 내에서 조정해 운용할 수 있어 올해 연말까지 얼마든지 완급 조절하며 과매도를 하지 않고 연착륙이 가능하다”며 “그런데도 연속 매도를 하는 것은 공매도 금지기간 중 지수 상승에 따른 공매도 세력의 손실을 막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을 67%나 더 보유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 결국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 가능성보다 해외 주식 상승에 베팅한다는 것”이라며 “만일 국민연금을 따라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탈출 러쉬가 현실화된다면 국내 주식시장의 공동화 현상이 심화돼 국내 주식시장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