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우리 나라로”… 쏟아지는 전세계 러브콜, 보조금에 세금 혜택까지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원금에 세금 혜택까지, 자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면 조(兆) 단위의 혜택을 약속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삼성에게 자국 투자 ‘러브콜’을 본격화한 미국, 일본에 이어 최근엔 EU(유럽연합)까지 나섰다. 이는 자동차 산업에서 시작된 ‘반도체 품귀’ 현상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된다. ‘산업의 쌀’, ’21세기의 석유’라고 표현되는 등 현시대 산업이 돌아가는 데에는 필수적이라 평가되는 반도체를 적시에 조달하지 못할 경우,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는 설명이다.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는 11일(유럽 현지시간) “EU가 10nm 이하의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EU 국가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며 “5G(5세대) 통신, 커넥티드카, 고성능컴퓨팅(HPC) 등과 관련한 반도체에 대한 미국과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EU는 독일, 프랑스 주도로 최대 500억유로(약 67조원)를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유력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따르면, 유럽 각국 정부는 보조금 등을 통해서 ‘투자액의 20~40%’ 정도를 투자 기업들에 지원할 계획이다.
현지에선 주요 유치 대상 기업으로 대만 TSMC와 함께 삼성전자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EU가 삼성전자와 TSMC의 참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재무부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TSMC와 삼성전자는 가장 혁신적인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이라며 “아직까진 결정된 바가 없으나, EU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으며, 삼성전자 역시 이에 대해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TSMC는 블룸버그에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 않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EU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역내 반도체 생산시설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일고 있다. EU엔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온, 스위스 ST마이크로 등 차량용반도체, 아날로그반도체 등에 강점을 갖고 있는 기업이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 비해 생산 공장은 많지 않다. 이들 기업들이 지난 20년 간 자체 생산을 줄이고 대만 TSMC, U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 칩 생산을 ‘외주’ 맡기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
문제가 생긴 것은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갑자기 증가한 작년 말부터다. NXP, 인피니온 등은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자 파운드리업체에 주문을 했다. 그러나 TSMC나 UMC 등 파운드리 업체의 생산라인은 이미 꽉 찬 상황이었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AMD 등 다수의 기업이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서버·PC용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 주문을 TSMC, UMC 등에 선제적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은 고객사들이 원하는 만큼의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세계적인 자동차업체 폭스바겐, GM 등은 본격적인 ‘감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는 EU보다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전세계 자동차 업계에 직격탄을 날린 반도체 부족 사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1일(미국 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공급망에서 잠재적인 병목 지대를 찾고 있는 중”이라며 “지금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업계 핵심 이해당사자들, 무역 파트너국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번 반도체 부족 사태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이 몇 주 안에 핵심 물자의 공급망 문제를 포괄적으로 점검할 것을 지시하는 범정부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반도체 공급 부족 탓에 미국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줄줄이 공장 가동을 중지하는 등 생산에 직접적인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이번주 시작된 북미 지역 3개 공장에서의 감산 조치를 최소 3월 중순까지로 연장했으며, 한국 부평 2공장도 원래의 절반 규모만 가동 중이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지원을 요구하는 서한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냈다. 인텔, 퀄컴, AMD 등 미국 반도체 회사 최고경영자(CEO) 21명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조금이나 세액 공제 등의 형태로 반도체 생산의 인센티브를 위한 상당한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요청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7%에서 최근 12%로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 삼성전자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에 최신 반도체 생산공장을 이미 건설하고 있는 상황이다. 1공장(P1)은 완공됐으며, 2공장(P2)엔 최첨단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3공장은 이제 막 착공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평택에 4~6공장 부지도 확보해놓은 상태다. 최첨단 공장 한 기에 30조원 정도의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는 이미 50조원 이상을 평택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택 공장에는 앞으로도 100조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한 상황.

물론, 해외 생산시설에 대한 필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미중 무역분쟁 등의 여파 등으로 인해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됐다. 세계 각국은 ‘자국 생산시설’에 대한 혜택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가 몰려 있는 미국과 EU에 공장을 지을 경우, 그만큼 비용 절감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분석된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대만 TSMC가 최근 해외 생산시설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삼성전자도 ‘견제’ 차원에서 움직임에 나설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꼈으나, 물밑에선 이미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약 20조원을 투자하는 대가로 미국 지방정부들에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5일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시에 약 170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 가능성을 전했고, 이에 향후 20년간 8억550만달러(약 9000억원)의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세금 감면을 요청하며 향후 10년간 1800개가량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증설이 확정될 경우, 착공 시점은 오는 2분기, 가동 시점은 2023년 4분기로 예상된다.
다양한 헤택과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전자가 미국이나 EU에 공장을 지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주문이 들어올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과 관련해서도, 미국 인텔 등 기업의 주문이 예상보다 적을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인텔은 “외부 파운드리 활용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으나, 핵심 제품인 중앙처리장치(CPU)와 관련해선 “대부분 자체 생산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 삼성이 P2에 들어설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한 파운드리 라인에 10조원을 투자하는 등 지난해부터 국내 투자를 본격화했다는 점 역시 감안할 부분이다. 즉, 삼성으로서는 ‘과잉 투자’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뼈아픈 경험도 있다. 2012년 12월 “39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들여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한다”고 발표했던 당시, 주요 고객사였던 애플이 TSMC로 외주 물량을 옮겨버려 곤경에 처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의 순현금은 104조원 규모다. “부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현금이 넘쳐나는 상황도 아니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3년 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M&A 대상으로 거론되는 NXP, ST마이크로, 인피니온 등 유럽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감안할 때 삼성에게는 적어도 30조원, 많게는 60조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이를 제외하면, 반도체 시설 투자에 투입할 수 있는 지금은 약 5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 EU 등의 혜택과 요청에 흔들려 섣부른 투자를 했다가는 정작 자금을 사용해야 할 곳에 못 쓸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한 전직 삼성전자 사장은 “반도체는 ‘충분한 자금’이 필수적인 산업”이라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가장 정확한 타이밍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