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과 함께 녹스는 금수저, 중소기업 ‘가업 승계’의 민낯

막대한 상속세에 휘청이는 중소기업계, 일부는 승계 포기하고 매각·폐업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세계 1등' 국내 기업들, 애써 일군 회사 남의 손에
국회는 '기업승계 완화' 논의 중, 기업 상속의 사다리 완성될 수 있을까
벤처_상속

상속을 통해 가업을 계승하는 ‘장수 중소기업’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상속·증여세 부담 및 각종 규제에 짓눌린 중소기업이 속속 가업 승계를 회피하면서다. 중소기업계 ‘경영자 고령화’가 심화하며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승계를 포기한 수많은 중소기업이 폐업 및 매각을 선택할 경우 고용 및 세수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계, 상속세 부담 짓눌려 ‘승계 포기’

현재 국내 상속세법에 의하면 과세표준 금액에 따라 최대 50%(최대주주 할증 시 60%) 세율이 적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약 25%, 2022년 기준)의 2배 수준이다. OECD 애널리스틱스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한국의 총 조세수입 중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42%로, OECD 국가 평균 0.42%의 6배에 육박했다. 이처럼 막대한 상속·증여세는 가업승계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로 꼽힌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빚을 내는가 하면, 상속세가 버거워 애써 일군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폐업하거나 매각하기도 한다. 후계자 세대 역시 이 같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승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2.6%는 기업승계를 하지 않을 경우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이처럼 승계가 불발돼 폐업으로 이어질 경우 약 57만 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고, 138조원에 달하는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추산했다.

현재 창립 후 30년 이상이 지난 ‘장수 중소기업’의 60세 이상 경영자 비중은 81%, 70세 이상 비중은 31%에 달한다. 경영자 고령화 현상이 점차 심화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과 같은 세 부담으로 기업을 짓누를 경우 수많은 중소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상속세 부담으로 무너진 기업들

실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폐업 및 매각을 택하는 중소기업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콘돔 업계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섰던 유니더스는 2001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래 제조 물량의 70%를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하며 시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2017년 기업 승계로 5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을 지게 됐고, 결국 2년 만에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이 강제로 ‘청산’당하기도 한다. 손톱깎이 생산으로 세계 1위 매출을 기록했던 쓰리세븐은 1억 개의 물량 중 90%를 수출하고, 미국 보잉과의 상표 분쟁에서 승리할 정도로 역사가 깊었던 기업이다. 하지만 2008년 급작스럽게 발생한 150억원 규모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했고, 이를 납부하기 위해 지분을 전량 매각해야 했다.

파산_벤처

국내 대표 종자 기업이었던 농우바이오의 경우 창업주가 별세한 뒤 1,2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을 지게 됐다.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유족들은 회사를 농협경제지주에 매각했다. 농우바이오는 역량을 갖춘 대주주를 만나 회사 경영이 오히려 안정된 사례이나, 이 같은 ‘행운’을 맞이하는 기업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다수 경영자는 세 부담에 짓눌려 열심히 일군 사업을 ‘어쩔 수 없이’ 팔아넘긴다. 시장을 이끌던 장수 기업들이 허무하게 주인의 손을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승계 활성화’ 법안, 여전히 국회 계류 중

정부는 중소기업계에 뿌리내린 ‘상속 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관련 내용을 담은 바 있다. 현재 상속인이 가업상속공제 특례를 받기 위해서는 사후 관리 기간인 5년간 표준산업분류상 동일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 변경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 업계는 이 같은 업종 변경 제한이 중소기업 투자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꾸준히 완화를 건의해 왔다.

이에 정부는 가업 상속인이 산업구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대분류 내로 업종 변경 제한을 완화하기로 했다. 상속인이 전기장비 제조업(중분류)을 영위하는 기업을 상속받은 경우, 같은 제조업(대분류)에 속하는 목재 및 나무제품 제조업으로 업종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상속인은 과감한 사업 전환을 통해 미래 비전 창출 및 투자 유치를 기대할 수 있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증여세 연부연납(분할납부) 기간을 현행 5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고, 증여세 특례 저율 과세인 10%가 적용되는 증여세 재산가액 한도를 6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늘리는 내용도 담겼다. 이들 완화책은 현재 ‘기업승계 활성화’ 법안으로 묶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술이나 경영 능력은 단기간에 배양되는 것이 아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국내 중소기업계는 ‘세월’을 앞세운 근본적인 성장에서 난항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정부가 업계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적절한 제도 개선을 실시해 가업 계승의 ‘사다리’를 마련해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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